▲발발가락에 네 개인 한국의 용을 형상화하였다. 참고로 중국은 발가락이 5개, 일본은 3개를 사용한다
하주성
왕은 홍건적의 난이 평정되자 다시 개경으로 돌아갔는데, 이 용호석은 그곳에 그냥 두고 갔다는 것. 만일 이러한 설이 맞는다고 하면 이 용호석은 제작된 지가 700년이 된 것이다. 오랜 세월 이 용호석은 천내리 강변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용호석의 설을 뒷받침 하는 공민왕묘 공민왕의 릉인 '헌릉'은 개풍군 해선리에 있다.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묻은 능침은 봉명산의 무선봉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데, 서쪽 것이 공민왕의 무덤인 현릉이며, 동쪽 것이 왕비 노국공주의 무덤인 정릉이다. 1365년 왕비인 노국공주가 난산으로 죽자, 공민왕 자신이 직접 주관하여 9년이란 세월에 걸쳐 무덤공사를 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