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서울시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사회학 고전읽기' 강의를 하고 있다
박정호
"초등학교 교사셨던 저희 아버지는 종종 저에게 '얘야 쇠고기보다는 돼지고기가 연하고 맛있단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인간들은 돼지고기보다 소고기를 맛있다고 느끼거든요. 아버지는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당시 경제적인 상황들을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소고기를 사먹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중간 계급인 아버지는 돼지고기를 사먹기 쉬운 구조적 위치에 놓여있었던 것이죠. 부르디외는 경제적 부와 취향이 구조적으로 연결되어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회화되고 구조화된 취향을 '아비튀스(habitus)'라고 이름 붙였지요."가장 좋아하는 운동을 묻는 질문에 어떤 이는 골프를, 어떤 이는 마라톤을 꼽는다. 우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렇게 특정한 취향을 가지게 되는걸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해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좋아하는 운동이나 음악, 음식 등, 개인의 취향이 경제적인 부와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대표작인 <구별짓기>에서 계급에 따른 취향과 문화 소비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개인의 선호나 취향, 관행이 계급집단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조명했다.
<구별짓기>를 교재로 지난 6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사회학 고전읽기' 시즌3 세 번째 특가에서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르디외는 '아비튀스'라는 개념을 통해 취향이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놓여있는 사회적 위치의 반영이기도 하다는 점을 환기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르디외의 분석은 경험적 분석과 이론적 주장이 생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며 "그의 계급 분석은 계급에 따라 빠른 속도로 다양화 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소비 양태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사회와 개인은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 관계피에르 부르디외는 파리 사회과학대학원과 프랑스 최고 학술기관인 꼴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학 교수를 지낸 프랑스의 사회학자다. 1980년대까지는 <구별짓기>, <재생산>, <호모 아카데미쿠스>등의 저작을 내며 대학에서 학술연구에 매진했지만 1990년대부터는 현실사회운동에 뛰어들어 신자유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며 <맞불>등의 저작을 남겼다.
부르디외가 죽기 전까지 재직했던 꼴레주 드 프랑스는 각 학문당 단 한 명의 교수만을 선정하는 프랑스 최고의 학술기관이다. 수많은 사회학자들 가운데 부르디외가 꼴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가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 교수는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세계 학계 내에서도 매우 이채로운 존재"라고 설명했다.
"사회학에서 사회가 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을 객관주의, 개인들의 의식과 행위가 모여 사회를 이룬다는 관점을 주관주의라고 합니다. 부르디외는 '아비튀스'라는 개념을 정립하면서 객관주의와 주관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구조와 행위의 상호관계를 새롭게 조명했습니다. 또한 경험 분석과 이론 연구를 생산적으로 결합해 냈지요.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속한 계급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았을 뿐더러 사회참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으며 후기 저작들 통해서는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적극적 비판을 모색했습니다." 아비튀스는 어떤 사람에게 특정한 취향을 갖거나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 의식적, 무의식적인 기제를 말한다. 김 교수는 "사회학은 기본적으로 개인과 사회 구조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며 "부르디외의 독창성은 사회 구조와 개인 사이에 아비튀스를 배치시켰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사회 구조와 개인 사이에 아비튀스가 있고 이 아비튀스를 통해 개인과 사회구조는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맛있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취향은 사회구조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신의 취향을 주변에 강요하기도 하거든요. 아버지 주위의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좋아하게끔 만드는 것이지요. 사회 세계를 어떤 주체의 의지에 맞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취향이 개인의 계급을 나타낸다"부르디외는 대표작인 <구별짓기>에서 개인의 출신 계급, 교육 등과 같은 사회 문화적 환경이 개인의 취향과 문화소비 경향을 다르게 만든다고 주장하며 아비튀스를 통해 그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과정을 설명한다.
구별짓기는 사회 구조에 영향을 받아 무의식적으로 일어날 수도, 개인이 의지에 따라 의식적으로 행해질 수도 있다. 이를테면, 어떤 이가 트로트 가요보다는 재즈를, 축구보다는 골프 같은 운동을 선호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이 사회적, 문화적으로 상류층에 속한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일수도 있다는 얘기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소비의 차별화는 계급적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구별짓기 전략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별화 전략은 나의 문화와 너의 문화가 객관적으로 다르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나의 문화는 가치있고 누릴 만한 것이지만, 너의 문화는 쓸모없고 가치 없다는 규범적 차이를 내포하는 것이지요. 상류층은 자신들의 문화를 고급한 것, 세련된 것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자연스러운 취향의 문제로 돌립니다. 소비의 취향이 개인적인 차이라고 보이게끔 만드는 것이지요. 그러나 부르디외는 이 취향이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계급적인 위치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합니다."그렇다면 이전에는 사회 상류층만 누릴 수 있었던 취향이나 문화가 대중화되면 그 취향을 소비하는 계급은 어떤 구도로 재편될까? 김 교수는 사진 찍기에 대한 1960년대 프랑스 국민들의 선호도를 조사했던 부르디외의 연구를 예로 들었다. 그는 "부르디외의 사진 찍기 연구는 취향이나 선호가 특정 직업, 계급집단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연구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부르디외는 서로 다른 사회적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사진찍기에 대해 어떤 선호를 보이는지를 연구했습니다. 1960년대 프랑스에는 사진이 이미 많이 보급된 상태였고 누구나 찍을 수 있었기 때문에 상류 계급은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중간 계급은 미학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독창적인 사진을 좋아했고, 도시노동자 계급은 사진 찍기에서 미학적인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각종 사진 찍기를 즐겼습니다. 화이트칼라 노동자는 유난히 예술 사진을 좋아하는 성향을 보였습니다. 이래야지만 타 노동자 계급과 자기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부르디외의 이 연구를 보면 사진 찍기에 대한 선호도 집단에 따라 서로 다르며 그 속에는 내가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을 구별 지으려고 하는 미세한 힘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김 교수는 "이러한 부르디외식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경제자본, 문화자본, 사회자본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모아야 한다"며 "부르디외의 연구는 이런 경험적 분석의 결론을 통해서 기존의 이론을 수정하기 때문에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