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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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가운데서도 친일을 직업삼아 한 자를 흔히 '직업적 친일파'라고 부르는데 조병상(曺秉相, 창씨명 夏山茂, 1891~?)은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 인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반민특위 재판기록>에 따르면, 그는 1922년 경성시(서울시) 학교평의원에 당선된 이래 경성부 협의원, 경성부회 의원(4회), 경기도회 의원(3회), 중추원 참의(2회)를 비롯해 조선식량영단 감사, 경성지방법원 인사조정위원, 선린육영회 이사, 동민회 이사, 갑자구락부 위원, 조선지원병후원회 이사, 국민총동원연맹 이사, 국민총력연맹 이사, 흥아보국단 발기위원, 임전보국단 이사, 경성 종로경방단장, 대화동맹 이사 등 친일단체 경력만도 무려 한 쪽에 달합니다.
조병상은 그 자신의 친일행적도 문제거니와 자신의 입지를 위해 일제말기 두 아들을 전쟁터로 내몬 '비정한 아버지'로서도 특기할 만한 인물입니다. 1939년 6월 제2기 육군지원병으로 입대한 그의 장남 태환(台煥, 창씨명 夏山光郞))은 조선에서 5년, 버마에서 2년, 총 7년간 일본군에 복무하다가 해방을 맞아 일본군 군조(軍曹, 중사)로 제대했습니다.
차남 문환(文煥, 창씨명 夏山正義)은 '학도병 제1호'로 자원입대하였습니다. 그의 두 아들의 일본군 입대는 전적으로 그가 독려한 결과인데 이는 일제 당국의 지원병제도 및 학도병 지원 홍보에 적극 활용됐습니다. 최근 서울현충원 장군묘역 현장조사를 갔다가 그곳에 묻혀 있는 그의 차남을 우연히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