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례궁수양대군 잠저 명례군 표지석
이정근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명례궁에 울려 퍼졌다. 수양은 신숙주가 꼭 필요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그의 신중함을 사고 싶었다. 수양대군이 명나라 사신을 마음먹으면서 신숙주를 서장관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 이유는 그의 재목됨을 점검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쌓아놓은 명나라 인맥과 면을 트기 위한 포석이었다. 신숙주는 훈민정음 작업할 때 세종의 명을 받고 명나라를 13번이나 왕래하며 명나라 조야의 실력자들과 교분을 쌓아놓았다. 헌데, 명나라 사신 길에 암초가 불거졌다. 안평대군이다.
안평대군의 책사 이현로가 안평을 부추겼다.
"공은 빼어난 용모와 기품 있는 수염을 가지셨고 시문과 서화에 능하시니 북경에 가면 그 명성이 가히 하늘을 찌를 것입니다. 중원에 드높아진 명예와 인망(人望)을 후일의 기반으로 삼으소서."이에 고무된 안평대군은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했다. 황보인의 딸이자 권은의 아내를 초청하여 귀한 비단의복을 주면서 그 아버지에게 청하게 하고 이현로를 황보인과 김종서 집에 보내 간곡히 청하게 했다. 사은사 자리를 놓고 형과 아우가 때 아닌 각축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형님이 북경에 가기를 청하였다고 하는데 그게 정말입니까?"안평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고명(誥命) 사은은 국가 대사인데 황보인은 최근 중국을 다녀왔고 김종서는 늙었고 남지는 병이 들었으니 하관(下官)을 보낸다면 중국 조정에서 어떻게 보겠느냐? 때문에 내가 가겠노라고 전하께 말씀드렸다."형과 아우가 벌이는 사신쟁탈전조선은 중국에 정기적으로 보내는 3대 사절 즉, 동지에 보내는 동지사(冬至使). 새해맞이 정조사(正朝使), 황제와 황후 생일에 보내는 성절사(聖節使) 외에 수시로 중국에 사신을 파견했다. 정치 외교적으로 청할 일이 있을 때 부정기적으로 보내던 주청사(奏請使). 중국이 은혜를 베풀었을 때 답례로 보내는 사은사(謝恩使). 황제의 칠순이나 팔순잔치에 가는 진하사(進賀使). 황제나 황태자의 상에 가는 진향사(進香使), 황실이 상을 당했을 때 가는 진위사(鎭慰使)로 조선 조정은 밤이 새고 졌다. 심지어 오가는 사신이 노정에서 만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문종이 승하하고 새로운 임금이 즉위했으니 고명사은사를 보내야 하는 것이다.
"형님은 국론이 따르지 아니할 것입니다."조정대신들이 반대할 것이라는 우회적인 겁박이다.
"나는 국정에 참여하지 아니하고 또 여러 재상이 있으니 비록 두어 달 중국을 다녀오더라도 무에 안 될 일이 있겠느냐? 지금 임금이 어리신데 내가 명을 받아 간다면 중국 조정에서도 우리나라의 체통을 얕잡아 보지 않을 것이다."안평대군이 가려는 고명 사신자리를 꿰어 찬 수양은 신숙주를 서장관으로 임명하고 중국으로 떠날 채비를 갖추었다. 정사와 서장관은 정했으나 부사 인선에 난항을 거듭했다. 수양은 민신을 찍었다. 김종서의 심복 민신을 데리고 가 안평대군 진영을 교란시켜보고 싶은 복안이었다. 허나, 상대 진영이 수양의 복심을 읽었다. 민신이 건강을 이유로 사양하면서 허후를 천거했다. 허후 역시 늙은 모친을 핑계로 고사했다.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안평대군의 밑그림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모두가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 있었다. 이 때였다. 함길도 도절제사 이징옥이 경성(鏡城)의 무기를 한성으로 밀반입한다는 첩보가 접수 되었다. 수양대군 사신 길을 권람이 극구 만류했다. 수양대군이 없는 사이 안평대군이 변란을 꾀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갈등이 생겼다. 소인배들은 고을을 품으려고 자신과 안평집 문전을 뻔질나게 드나들지만 사나이 가슴에 조선을 새겼다면 중원의 공기를 마셔보고 싶다. 금년 아니면 시간이 없다. 이 때 한명회가 계책을 내놓았다. 황보인의 아들 황보석과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를 데리고 가면 딱이라는 것이다. 절묘한 계략이었다. 그들을 데리고 가면 천하의 김종서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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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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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 한 목숨 값어치 있게...'명례궁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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