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산경복궁 뒤 백악산 정상에 있는 표지석
이정근
세종은 맏아들 이향을 세자로 삼았다. 문종이다. 조선 최초의 적장자 세자다. 세상 사람들이 다시 수근대기 시작했다.
"백악산이 비틀어져 왕통이 방계로 흐른다는 속설은 근거 없는 낭설이다. 그러한 뜬 소문을 입에 담는 자는 고려를 흠모하는 불순세력이다."그러나 한 가지 약점은 있었다. 이향이 세종의 맏아들로 태어난 것은 분명한데 경복궁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문종은 세종이 태종의 셋째 아들로 대군 생활을 하고 있던 장통방 사저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 때 태종의 세자는 양녕대군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단종은 가장 완벽한 세자였다. 허니, 단종이 어떠한 길을 가게 될지 세인들의 초미의 관심이다.
근정문에서 즉위한 단종은 경복궁이 왠지 싫었다. 침소에 들어 잠 못 들어 뒤척이는 밤. 뒷산 백악에서 울어대는 부엉이 소리가 무서웠다. 자선당에서 자신을 낳고 하룻만에 돌아가신 어머니.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워주고 서른여덟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 신랑 정종을 따라 사가에 나가있는 누나. 지밀상궁이 밤을 세워 지켜주지만 무서웠다. 이 세상에 홀로 있는 것만 같았다.
어린 임금의 마음을 간파한 황보인과 김종서가 다른 궁으로 이어(移御)할 것을 주청했다. 반갑고 고마운 제안이었다. 당장에 옮겨갈 것을 지시했으나 창덕궁을 한동안 비워두어 수리해야 입궁할 수 있다는 보고였다. 경복궁을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다. 창덕궁을 영선하라 명하고 수강궁으로 들어갔다.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거처하던 별궁이다.
수강궁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그리웠다. 나가 살고 싶다. 물망에 오른 곳이 효령대군 사저였다. 효령대군이면 할아버지뻘되는 종실 어른이다. 나가 산다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았지만 결정했다. 그곳 역시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집 같았다. 인간이 그리웠다.
누나가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 허나, 출가한 공주가 궁에 들어와 사는 것은 법도에 어긋났다. 방법은 하나. 임금이 나가는 것이다. 때는 바햐흐로 춘삼월. 피접을 명분삼아 영양위 정종집에 나와 있으나 처서가 지나도 창덕궁 수리는 요원하다. 창덕궁 중수를 기회로 황보인과 김종서가 자신들의 사저를 증축하고 개축하는데 자재를 가져다 쓰고 숙련된 목공과 석공을 차출해버렸기 때문이다.
먼저 치고 사후 보고하는 것이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