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민관 폭파의거' 세 주역 왼쪽부터 강윤국, 조문기, 유만수 의사
자료사진
1945년 3월, 조선청년 셋이 서울 관수동에 다시 모였습니다. 그들은 일본에서 막 귀국한 조문기와 유만수, 강윤국. 셋은 의기투합해 '대한애국청년당'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습니다. 이 명칭은 조문기가 우연히 집 장독대에서 발견한 <조선독립소요사>에 실린 '대한애국청년당'에서 따온 것인데, 약칭으로 '애청'이라고 불렀습니다.
세 번째 모임에서 이들은 거사계획을 세웠습니다. 우선 대표적인 친일거두 3명, 총독부 인사 셋을 처단하기로 결정했는데, 처단 1순위로 박춘금(朴春琴)이 거론되었습니다. 그 외 화신 재벌 박흥식, 친일경찰 김태석도 거론되었는데, 거사에 쓰일 무기로는 다이너마이트와 권총으로 결정했습니다.
친일 반역도들의 거동을 살피던 중 박춘금이 포착되었습니다. 시내 명월관에서 대의당(大義黨)을 결성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구미가 당기는 일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잘만 하면 박춘금은 물론 이성근, 김동환, 고원훈, 김사연, 손영목 등 대의당에 참여한 친일 거두들을 일망타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7월 21일자 신문 1면에는 '아시아민족분격대회' 광고가 대문짝만하게 실렸습니다. 주최 대의당, 일시는 7월 24일 저녁 7시, 장소는 부민관. 이날 모임에서 '애청'은 첫 거사로 아시아분격대회를 분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거사 72시간을 남겨두고 시한폭탄을 만들기로 결정했는데, 다이너마이트는 유만수가 수색 변전소 작업장에서 입수한 것이었습니다(* 독립운동사를 보면 시한폭탄을 만든 건 이 때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드디어 거사 당일, 부민관은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세 사람은 인파를 뚫고 행사장으로 잠입해 관중석 한 가운데 자리를 잡았습니다. 친일경찰 출신으로 당시 <매일신보> 사장으로 있던 이성근이 사회자로 나섰는데, 무대 위는 참으로 군침 도는 자리였습니다. 한 쪽에는 아베 총독을 비롯해 정무총감, 군사령관 등 침략원흉들이 앉아 있었고, 맞은 편엔 박춘금을 비롯해 아시아 각국에서 온 친일괴수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습니다.
'저 놈들을 한 방에 다 날려버릴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