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내용이 방송된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
SBS
셋째, 제한적인 무과실 국가배상제도를 도입했다.
원칙적으로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 및 과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사고(증거부족 등으로 인해) 중 잠정적으로 산부인과 분만사고에 한하여 도입되는 제도이다. 사고 중 높은 발생 빈도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고 건 당 그 피해 정도가 가장 클 수 있는 산부인과 분만사고에 한하여 무과실 국가배상제도를 우선 적용하는 것으로 잠정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를 평가하기위한 위원회는 조정위원회내에 둘 것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조차 잡혀있지 않은 상태이다. 급기야 내년도 시행일로부터 1년 유예한다는 웃지 못할 상황마저 연출됐다.
그러나 이 규정은 이번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강하게 밀어붙였던 복지부조차 무과실(의료인이 충분한 주의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제도가 외국에도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영국이나 스웨덴 등 이미 무과실 보상을 허용한 다른 나라에서도 무과실로의 도피로 인한 재정부담 때문에 아주 제한적인 범위로 한정하고 있다) 신중한 처리를 요구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그 대상이나 범위에 대한 데이터를 하나도 갖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재정이 얼마나 소요될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과실 보상을 허용하게 될 경우, 과실을 입증하기 보다는 무과실 보상으로 빠지려는 위험성을 높여 의료사고의 원인과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절차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과실에 대한 책임 규명을 소홀하게 만드는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엄청난 재원만 소요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더 큰 문제는 진료과목이나 대상을 제한한 것보다 '보상액'을 제한한 것이다. 산부인과 분만사고(태아 뇌손상)의 경우, 대부분 데이터(검사) 등에 의한 기록이 아닌 의료인 개인의 주관에 의해 작성되고, 기록 양이 적으며, 대부분 분만실이나 수술실 등 밀실에서 사고가 나므로 사실상 진료기록으로 과실여부를 입증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번에 통과된 법안대로라면 [사례3]의 경우, 이를 무과실 보상 사고로 분리하여 3000만원~5000만원(지난 23년간 이 법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의료계가 초기 3000만원을 무과실 보상액 상한선으로 제시하였고, 시민단체들은 이 제도의 폐단을 주장하며 폐기를 주장했다. 이에 의료계가 그 금액을 5000만원으로 올려 상한 금액으로 제시하였기에 이 정도의 보상액수를 산정한 것, 아직 정해진 바는 없음) 한도에서 보상(또는 이를 조정의 전제 조건으로)하고 의사의 형사면책이 전제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과연 이를 보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일 피해자가 얼마나 될까.
넷째, 보험체계상의 보상제도가 아닌 대불제도를 도입하였다.
손해배상금 대불제도의료사고로 인한 피해자가 ①조정이 성립되거나 중재판정이 내려진 경우 또는 조정절차 중 합의로 조정 각서가 작성된 경우, ②소비자기본법 제67조 제3항 따라 조정조서가 작성된 경우, ③법원이 의료인 등에 대하여 금원 지급을 명하는 집행권원을 작성한 경우(다만, 판결은 확정된 경우에 한함)에 해당하나 그에 따른 금원을 지급받지 못한 때에 조정중재원에 대불을 청구할 수 있다. 대불제도는 재정이 어려운 의사나 의료기관의 지불을 조정중재원이 담보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궁극적으로 의사나 의료기관이 전적으로 사고에 대한 보상을 책임지는 형태로 의사나 의료기관의 주머니 상태가 고려되어야 하는 상태에서의 보상체계다.
그러나 현재 평균 배상액이 350만원(현재 의료사고로 인한 평균 배상액은 1500만원 정도이나 의사협회 공제회의 평균 배상액은 350만원)에 불과한 의사공제회에 '임의가입'형태로 운영하겠다는 것은 시민·사회단체가 그동안 주장하는 완전한 책임보험(강제가입)과 종합보험(임의가입)에 의한 보상체계를 무력화하고 제도를 훨씬 후퇴시키는 것으로, 이는 곧 운전을 하면서 책임보험이나 종합보험에 들지 않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의료사고 피해구제법'이 의사 위한 법 되지 않으려면의료사고는 의료행위 중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고, 평생 병원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국민이라면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문제다.
23년 만에 제정된 이번 피해구제법에는 시민·사회단체가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 오던 입증책임전환 규정은 빠지고, 오히려 우리나라에 입법례가 없는 특정 직역(의료인)에 대한 예외적인 형사특례를 적용하고, 산부인과 분만 사고에 한하여 제한적인 무과실 국가배상제도도입 근거를 마련해 두었다.
이 법안에 대해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 대표는 "의료사고 분쟁의 진실를 밝히고 억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여야 하는데, 정부가 외국인 환자 유치 정책을 위해 법률 제정을 밀어붙이면서 의료계의 입장을 대폭 반영한 채 통과됐다"고 지적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 및 시민단체는 이 법과 관련해서 시행일로부터 1년 더 유예기간을 두고 시행되는 형사특례와 무과실 보상제도 모니터를 통해 법안의 부당성과 불합리성 그리고 의료사고를 통계화 할 수 있는 근거 마련을 주장할 것이다.
의료사고 피해자나 가족들의 피해보상은 담보되지 않으면서 의사들에게 자칫 민·형사적 책임만 면하게 해주는 "의사를 위한 법"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강태언 기자는 의료소비자연대 사무총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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