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8일 오전 서울 효자동 청와대 앞 '청와대사랑채' 2층에 마련된 4대강 홍보물에서 4대강 수질 감시를 위해 투입하겠다는 '로봇물고기'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권우성
잘 잊는 국민이 무책임한 정부를 만든다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 사업 관련 주장 가운데 결정판은 '선박을 운영하면 수질이 좋아진다'는 말일 것이다. 배의 스크루가 산소를 공급하기 때문에 물이 맑아진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학자들까지 나서서 이런 몰상식을 옹호했다는 점이다.
나는 '스크루 수질 개선론'이 사실이길 바란다. 어린 시절 목욕탕에서 '물장구치지 말라'는 꾸중을 자주 들었던 사람으로서 말이다(난 그저 욕탕의 수질을 개선하고 있었을 뿐인데). 하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보 쌓고 강바닥 파는 일은 더욱 하지 말아야 한다.
<로이터통신>은 작년 3월 18일 환경단체보고서를 인용해, 4대강 사업이 조류 50종 이상을 멸종위기로 몰고 갈 것이라는 우려를 전했다. 기껏 하루에 서너 차례 오갈 배가 물을 정화한다고 주장하면서, 강에 떼로 상주하며 시도 때도 없이 물갈퀴를 젓는 새들은 왜 내쫓으려 하는가. 연료도 들지 않고 기름 오염 우려도 없는 '친환경 스크루'를 말이다.
4대강 사업은 전 세계 환경, 생태 전문가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독일 수리전문가 한스 베른하르트 교수는 이달 4일 유엔환경계획 슈타이너 사무총장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4대강 사업이 생태를 보존한다는 한국정부 주장은 아무런 학술적 근거도 없으며, 공사 강행 시 상상키 어려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는 경고였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편지를 사적인 주장으로 치부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수많은 전문가 동료 및 환경단체와 조율해 도달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하천 복원은 강을 자유롭게 흐르게 만드는 것이지, 보로 막아 변형시키는 것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상식이다. 이런 상식적 목소리를 한국에서는 왜 이리 듣기 어려운가.
방법은 하나뿐이다. 몰상식한 발언과 결정에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게 정치인이든, 관료든, 교수든 말이다. 쉽게 잊는 국민이 무책임한 정부를 만드는 법이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도 말하지 않았던가. 정치판에서 건망증보다 기특한 것도 없다고.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몰상식의 책임을 묻는 것과 몰상식이 낳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라는 사실이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4대강 사업을 당장 중단해야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어차피 도로 뜯어내야 할 어리석은 공사다. 왜 막대한 돈을 더 들이고 재난의 고통을 당한 후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이명박 정부가 망가뜨린 것 둘 : 공동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언제부터 그토록 열성적인 환경주의자였는지 말이다. 그것도 강만 살릴 수 있다면 온 국토를 다 파헤쳐도 좋다는 급진론자가 아닌가. '지구해방전선(Earth Liberation Front)' 같은 환경 테러단체가 무색할 지경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서울이라는 비인간적인 공간에 생겨난 청계천은 사람들에게 숨 쉴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생각한 바를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이명박 대통령(당시 서울시장)의 성향이 이 작업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해낸 것도 사실이다. 청계천 복원이 이명박 시장이 생각해 낸 것도 아니고, 복원 과정과 결과가 가장 생태적인 방식은 아니었을지라도 말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잘 경험하지 못했던 시민들은 이 '불도저'를 환영했다. 그러나 이 '행복한 결과'는 큰 불행의 시작이었다. 안 그래도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청계천 신화'는 바람직하지 못한 학습효과를 낳았다.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저질러 놓으면 좋아하는 게 국민들'이라는 그릇된 신념을 강화한 것이다.
대운하 시절부터 수송과 물류는 사업의 핵심이 아니었다. 4대강 사업의 핵심이 생태와 환경이 아니듯 말이다. 대운하 선박이 서울-부산 구간을 운행하는 데 70시간이 걸리는 비효율을 지적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관광이 주목적'이라고 말을 바꾸지 않았던가. 대운하와 사대강 사업의 공통분모를 파악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노리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바로 '개발' 그 자체다.
이 점은 베른하르트 교수가 슈타이너 총장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4대강 사업이 "하천공학과 하천생태계 측면에서 볼 때 지극히 무책임한 사업으로, 건설업계에 대한 대규모 지원책에 불과하다"고 썼다. '한반도 대운하'든 '강 살리기'든, 땅을 파고 시멘트를 붓는 순간 대통령이 원하는 바는 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