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독립전쟁의 영웅케말은 30대 중반에 영국군의 갈리폴리 반도 상륙작전을 격퇴하는 반격전에서 눈부신 전과를 거둬 장군 특진과 함께 제16군단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군사령관이나 고급관료에게 붙이는 ‘파샤’(Pa?a)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김당
무스타파 케말은 1915년 대령 시절인 30대 중반에 영국군의 갈리폴리 반도 상륙작전을 격퇴하는 반격전에서 눈부신 전과를 거둬 장군 특진과 함께 제16군단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군사령관이나 고급관료에게 붙이는 '파샤'(Paşa)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붕괴하자 케말은 터키 민족독립전쟁을 일으켜 그리스 점령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해 공화제를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명제 아래 정교분리와 정당정치 확립, 이슬람 전통복장 폐지, 남녀평등권 도입 등 신생 터키공화국의 근대화-민주화에 헌신했다.
1934년 의회가 '아타튀르크'(터키인의 아버지)라는 경칭 헌정 그는 그 공로로 50대인 1934년 터키 국회로부터 '조국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타튀르크'라는 경칭을 헌정 받아 이를 자신의 성(姓)으로 사용했다(터키인들은 아랍인의 관습대로 성을 사용하지 않다가 1934년 국회가 '성 사용법'을 통과시키면서 성을 쓰기 시작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4년 뒤에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름이 바뀔 때마다, 오스만제국 변방의 소년에서 혁명을 꿈꾼 청년장교로, 제국의 전쟁영웅으로, 그리고 새로운 공화국의 건설자로 변해갔다. 그의 이름 속에는 자신의 운명과 함께한 터키 민족의 현대사가 반영돼 있는 셈이다.
신생 터키공화국을 15년 동안 통치한 케말이 맨 먼저 단행한 개혁은 술탄제의 폐지와 정교분리 원칙의 확립이었다. 터키는 지금도 7천만 국민의 99%가 이슬람교도이지만 헌법상 정치와 종교가 엄격히 분리되어 '세속주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이슬람국가 중의 하나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의 합헌성 검토, 법 적용 분쟁시의 법률해석, 헌법수정 문제의 검토, 정당 폐쇄권 등의 권한을 가진 터키 사법부의 최고위 조직인 헌법재판소(Constitutional Court)는 지난 96년에 이어 2001년에도 '세속주의를 일탈했다'는 이유로 집권당을 폐쇄한 바 있다.
세속주의 국가 터키에서 케말은 '알라의 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