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사진어느 모임에서 야유회라도 온 걸까요? 숲에 ON반 입학식 후 모두 모였습니다.
조요섭 제공
그런데 문제는 신나게 연주하는 5명의 아줌마를 멀리서 지켜보던 장 박사님이라는 분의 말이 화근이었습니다.
"숲에서 듣는 오카리나 소리가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몇 달 후 서울에서 토론회가 있는데 공연 한번 부탁드립니다."
아마 그분은 5월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제 숲 유치원 토론회가 있는데 그곳에서 공연을 해달라고 요청 했겠지요. 제안 받은 아줌마들은 들뜬 마음에 무조건 이를 받아들였는데 설명회 마친 다음날 장 박사님이 말한 곳이 어디인지 서로 확인하다 장소가 뒤엉킨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기억은 점점 희미해졌고 마침내 국회 의사당과 위원회관, 회의장 등 온갖 이름을 마음대로 갖다 붙이고 있었습니다.
국회의사당, 양복 입은 점잖은 분들 멱살 잡고 뒤엉키는 곳?그날 아줌마들이 연습을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 후, 뒤 늦은 연습에 몰두해 있는 아내에게 제가 아는 상식을 말했습니다. "국회의사당은 의원들 회의하는 장소지 공연 펼치는 곳이 아닌데 장소를 다시 확인해 봐"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뒤돌아 생각해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은 도시에 사는 그녀들이 빠듯한 살림에 애들 챙기랴, 남편 뒷바라지 하랴 하루하루 정신없을 텐데 국회의사당과 주변 건물에 관심 둘 일이 없었겠지요.
굳이 국회를 기억하자면, 설거지 하며 힐긋힐긋 쳐다보던 텔레비전에서 양복 입은 점잖은 분들이 서로 멱살 잡고 뒤엉키던 곳 정도일 겁니다. 한동안의 소란은 어린이집에 확인 결과 국회 의원회관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일 있은 후, 열혈 아줌마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연습에 몰입했습니다.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불어 재끼는 오카리나 소리에 온 아파트가 들썩였습니다. 또 하나 잊지 못할 일은 연습 중간 쉬는 시간엔 열띤 토론이 이어집니다.
장소와 격식에 맞는 선곡이 중요한데 지금 연습중인 곡이 맞는지, 옷은 어떻게 통일할 것인지, 아이들은 누구에게 맡길지 등 평범한 30대 아줌마들의 늘어나는 고민이 재밌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공연 전까지 이어지는 고민을 지켜보던 제가 아내에게 위로랍시고 한마디 던졌습니다. "자연스럽게 가. 전문가들도 아니잖아. 약간의 실수가 더 자연스운거야." 이 소리 후 쏟아지는 아내의 싸늘한 원성에 집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토론회 참석자들 일본 원전 사고로 한국행 꺼려좌충우돌하는 사이 시간을 흘러 공연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4월 13일 아내가 어린이집으로부터 안타까운 통보를 받았습니다. 공연이 연기됐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숲 유치원을 먼저 운영하고 있는 전 세계 여러 곳 참석자들이 일본 원전 사고로 한국행을 꺼려해 토론회가 연기됐습니다. 덩달아 공연도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일이 돼 버렸습니다.
옆에서 아줌마들의 공연 준비를 지켜본 터라 아내의 그 말에 제가 더 안타깝습니다. 일본 원전 사고 여파가 이런 식으로 아줌마들에게 영향을 미칠 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동안 아줌마들은 토론회에 걸맞은 연주곡을 골라 밤낮없이 맹연습했는데 이를 어쩌죠?
그녀들은 청중들에게 짬짬이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보이겠다며 온 동네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죄송스런 일도 불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대에서 서보지 못하고 허망하게 무너졌습니다.
신기한 일은 일본 원전 사고로 행사가 연기돼 공연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데도 그녀들은 별 반응 없이 계속 오카리나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속으로만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 걸까요? 저는 그런 아줌마들의 모습을 보며 며칠간의 작은 소동을 되돌아봅니다.
5월 공연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팍팍한 삶 속에서도 웃음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온 그녀들이 공연을 준비하며 보낸 요 며칠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으리란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는 무대에서 받지 못한 박수를 아낌없이 그녀들에게 보냅니다.
마음의 상처 안은 그녀들, 청아한 소리의 흙피리를 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