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1층 식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신관 14층으로 장소를 옮기자, 뒤늦게 소식을 듣고 온 당시 엄기영 MBC사장이 문이 잠긴 이사회장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사회에 참석한 엄 사장은 회의장을 나오며 "사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권우성
권택기·김영우·장제원 의원 등 친이계 초선 의원 40여 명은 당시 <PD수첩> 보도를 정치적 선동으로 규정하면서 "자체 정화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제작 책임자와 최고경영자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했었다.
하지만 당시 집단성명에 이름을 올렸던 안형환 한나라당 대변인은 3일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한나라당만이 강원도의 발전과 강원도민들의 행복을 위해서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엄 전 사장이 한나라당에 입당한 것"이라며 감쌌다.
안 대변인은 기자와 만나서도 "2009년 당시 MBC 사장으로서의 엄기영과 한나라당 소속으로 강원도지사에 도전하겠다고 나선 엄기영은 다르지 않느냐"고 엄호했다. 함께 성명을 발표했던 한 친이계 의원도 "당시 엄 전 사장이 MBC 수장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 것"이라며 "강원도지사 출마와는 별개 사안"이라고 말했다.
물론 한나라당과 영입 경쟁을 벌이다 물먹자 "사람을 잘 못 봤다"느니 "갈수록 허상이 드러나고 있다"고 공격하는 민주당의 태도도 분열적이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나라당 내에서도 환영의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집단성명에 이름을 올린 또 다른 친이계 의원은 "엄 전 사장이 한나라당에 들어와서 공직 후보가 되겠다고 한 이상 당시 <PD수첩>의 편파 보도와 정치적 선동이 맞는 것이었는지, 당시 엄 전 사장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표명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경선 과정에서 당당하게 검증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 친이계 의원도 "2009년 성명에 담긴 엄 전 사장에 대한 비판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말했고 또 다른 의원은 "MBC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잡음을 일으킨 엄 전 사장이 한나라당의 강원도지사 후보로 적합한지 의문"이라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는 "경선 과정에서 (당시 사태에 대해) 아직 남아 있는 당원들의 섭섭함을 달래줘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엄기영의 '커밍아웃'은 이제부터 시작?리서치뷰가 지난 26~27일 이틀 동안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수 1132, 오차한계는 신뢰구간 95%에 ±3.1% 포인트)에서 엄 전 사장은 42.2%를 얻어 최문순 민주당 의원을 6.9%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엄 전 사장을 쫓아냈던 한나라당이 염치없음을 무릅쓰고 그를 영입한 것은 '대통령급 인지도'를 앞세운 매력적인 경쟁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강원도 탈환에 사활을 걸고 있는 한나라당으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엄 전 사장도 '한나라당 간판'이 당선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한나라당 간판'을 단 엄 전 사장은 그에 걸맞은 정체성을 보이라는 요구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당내 경선 과정에서 당원들의 섭섭함을 달래줘야" 하고 또 "정치적 선동 방송으로 국정을 마비시킨" MBC 수장에게 과연 한나라당의 '파란색 잠바'가 어울리겠느냐는 당내에 잠복하고 있는 의구심도 불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엄 전 사장의 '커밍아웃'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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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잠바' 엄기영의 '커밍아웃'은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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