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6일(현지 시각)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시민이 무바라크 퇴진을 이끌어낸 시위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김덕련
이번 아랍권 민주화 열풍은 단지 독재 타도라는 정치적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사상혁명이다. 아랍인은 물론 더 나아가 제3세계 권위주의 체제 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구조(mentality)를 바꿔놓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리더가 없는 혁명'을 성공시켜나가고 있다. 정보통신 수단을 한 손에 쥔 개인들이 모여 정권을 교체하는 '새로운 틀의 21세기 혁명'이다. 과거처럼 권위주의에 도전하기 위해 조직력과 물리력을 갖춰 장기간 준비하고 대치해야 할 필요가 없다. 때문에 이번 민주화 혁명이 중장기적으로 산유국 왕정체제에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우선 헌법을 가진 공화정 독재정권이 붕괴할 것이다. 이미 몰락한 튀니지와 이집트, 그리고 현재 위기에 처한 리비아와 예멘 모두 공화정이다. 연일 시위가 진행 중인 알제리, 이라크 등 다른 공화정도 불안에 휩싸여 있다. 두 번째 변화의 바람은 입헌군주국으로 불 것이다. 이미 바레인에는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시아파가 소수 수니파 왕정의 퇴진을 요구하며 연일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다른 입헌군주국 모로코와 요르단에서도 시민들은 포괄적인 정치개혁이 없을 경우 체제에 도전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절대세습왕정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주로 걸프 산유국이 주축인 이들 왕정국가의 경우도 오일머니로 국민에게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임이 틀림없다. 왕족이 모든 정치권력과 경제적 이권을 차지하고 있어 많은 시민들은 비록 먹고살 만하더라도 상대적 박탈감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사우디 등 대부분 왕정국가가 이를 막거나 늦추기 위해 대대적인 복지 확대와 개혁조치를 현재 선제적으로 내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왕정의 몰락을 부추기는 변수가 리비아 사태에서 등장하고 있음을 유의해 지켜볼 필요가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시민혁명은 큰 틀에서 민주화 요구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리비아의 상황은 부족간 갈등이라는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부족주의가 리비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걸프지역 아랍권 왕정에서도 부족주의는 통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 국명의 사우디는 최대 부족의 가장 강력한 가문의 이름인 '사우드'에서 나왔다. 이 사우드 가문이 왕족을 구성하고 대부분 정부 요직은 물론 유전의 관리 및 주요 경제활동을 사실상 독식하고 있다.
사우디만이 아니다. 소위 왕정이라 불리는 걸프국가에서는 가문의 수장이 절대군주이자 세습군주로서 군림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는 나흐얀 가문, 두바이는 마크툼 가문, 카타르는 싸니 가문, 쿠웨이트는 사바흐 가문이 왕위는 물론 정부 요직을 거의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집권할 뿐더러, 쿠웨이트를 제외하곤 실질적인 선거제도도 없다.
이미 변화하기 시작한 중동의 정치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