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으로 인한 매몰지 주변 하천과 토양, 지하수 오염 등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구제역·AI 조기해결을 촉구하는 범국민비상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에서 동물보호시민단체 회원이 야만적인 살처분 중단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유성호
이제 구제역 발생은 소강상태에 들어섰는가? 그런데 이상하게 매몰두수는 계속 늘어간다. 2월 들어서도 매일 3만~4만 마리 가축이 살처분을 당하고 있다. 왜일까?
그것은 정부의 눈가림식 통계 때문이다. 충남에서만 2월 7일 14건, 2월 8일 6건, 2월 9일 6건의 구제역 양성이 확인되었으며, 의심신고도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구제역 발생 농장이 10km 방역대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정부통계에서 제외되었다. 2월 13일까지 충남에서 총 202건의 구제역이 발생했지만, 그중 정부통계에 포함된 것은 15건에 불과하다.
1997년 구제역 사태로 약 380만 두의 가축을 살처분했던 대만은 전국적인 백신접종을 실시했음에도 2001년까지 구제역이 발생했다. 이후 2007년까지 매년 예방접종을 실시했지만 2009년 새로운 구제역 바이러스가 유입되어 2010년까지 발생보고가 있었다. 우리나라도 구제역 재앙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내에 구제역이 종식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실패 예고된 백신정책, 좌충우돌 매몰대책정부는 1차 예방접종 후 소는 14일자에 100%, 돼지 성돈(成豚)은 20일자에 70%, 비육돈(肥育豚)은 21일자에 80% 항체가 형성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백신접종을 실시한 지 한달이 지났음에도 구제역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애초에 실패가 예고된 정부의 잘못된 백신정책 때문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해 12월 22일 이미 16개 지역에 구제역이 확산된 상황에서 안동·파주 등 5개 지역의 소만을 대상으로 링백신(ring vaccination,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일정 반경 내에서 실시하는 백신접종)을 하기로 결정했다.
돼지는 소에 비해 1000배나 높은 고농도의 바이러스를 공기중으로 내뿜으며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도 돼지를 백신접종 대상에서 제외했다가 올해 1월 7일이 돼서야 일부 지역의 씨돼지와 어미돼지에게 접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다 결국 1월 13일에는 새끼돼지까지 포함하여 전국 백신을 하기로 뒤늦은 조치를 내렸다.
둘째, 백신 자체의 한계 때문이다. 백신은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해서 발병을 완화시키며, 바이러스 배설량을 감소시켜 전파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다량의 바이러스가 침입할 경우 감염 자체를 막아주지 못한다. 게다가 돼지는 백신에 의한 방어율이 그리 높지 않다. 영국 퍼브라이트 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접종 후 10일째 방어율은 19%, 29일째 방어율은 75%에 불과했다. 소는 예방접종 후 28일까지 구제역 임상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돼지는 예방접종 후 42일까지 그 증상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다.
셋째, 정부가 충분한 준비 없이 상황에 쫓겨 예방접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살처분 및 백신접종 방역팀에 의해 구제역 바이러스가 널리 퍼졌을 가능성도 있다.
넷째, 정부의 일관성 없는 매몰범위 축소 때문이다. 정부는 1월 20일 예방접종 후 14일이 지난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 감염가축만 매몰하도록 지침을 변경했다가, 1월 27일엔 백신접종을 마친 농장에서는 14일 이전에라도 감염가축만 매몰하도록 범위를 더욱 한정했다. 그 결과 같은 농장에서 구제역이 8차례나 발생해 그때마다 가축을 매몰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로는 자신에게, 허물은 아랫사람에게?이처럼 구제역 대재앙이 초래된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초동방역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치열한 자기반성을 하지 않고 축산농민을 탓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공(功)은 자신에게 돌리고 과(過)는 아랫사람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21일 한 언론은 12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과거 대책으로는 안되고 전문가들과 상의해 조만간 심층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뒤에야 농식품부가 그날 밤부터 급히 회의를 열어 백신접종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전국 백신접종 방침도 대통령이 관계장관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항체를 비롯한 근본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시한 뒤에야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창범 농식품부 축산정책관은 12월 4일부터 백신접종을 검토하여 12월 20일 백신접종에 대해 내부결정을 하고 백신 제조를 지시했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이 지시를 내리기 17일 전부터 농식품부에서 실무적으로 백신접종을 검토했으며, 국무회의 하루 전에 이미 농식품부에서 백신을 제조하라고 지시까지 한 상황이었다. 최근 축산정책관은 문책성 경질을 당하였고, 현재 외부전문가 채용을 위한 일반공모가 진행중이다.
설 연휴가 끝난 2월 8일에도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구제역 재발을 막기 위해 방역체계 개선방안과 축산업 선진화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러한 지시는 재탕은커녕 밍밍해져버린 삼탕에 불과하다.
또다시 우려먹는 축산화 선진화방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