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블랙리스트' 공방을 벌였던 방송인 김미화씨는 "의기소침해질 때도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과 트위터 팔로워들의 도움으로 더 당당하게 싸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소연
전화만 하면 늘 OK였다. 별스럽게 가리지 않았고, 얄밉게 재지도 않았다. 자신이 필요한 자리라면 선뜻 '좋아요!' 했다. 인터넷방송이지만 양머리 패션을 한 채로 <찜질방 토크>에 참여해 주었고, 인터뷰는 마다한 적이 없었다. 유명 연예인인 코미디언 김미화(47)는 이웃집 언니처럼 편안하게 늘 가까이 서 있었다.
지난해 7월 19일 KBS가 소위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그를 고소한 뒤로 전화가 끊겼다. 잘 받지 않았고, 간단한 문자메시지 정도만 응했다. 참 오랫동안 기다렸다. 여름 지나 가을, 가을 지나 겨울, 그리고 해를 넘겨서야 그를 겨우 만날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KBS는 고소를 취하했고, 보수 인터넷 매체와의 명예훼손소송에서도 일부 승소했다.
지난 18일 김미화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편집국에 나타나자 기자들은 스마트폰부터 꺼내들었다. 인증샷을 위한 것이다. 기꺼이 포즈를 취해 주었다. 최대한 밝게 웃었고 재밌는 표정을 잡아주었다. 천상 코미디언이었다.
어쩌면 그에겐 60년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는 지난 6개월, 코미디언을 슬프게 했던 슬픈 한국사회. 세월이 흘러 먼 훗날, '그땐 그랬지' 하고 얘기할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꾹 참기로 했다. 다 풀어헤치기에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관용이 부족한 듯해서 '오프 더 레코드'로 갈음한다.
그 엄중한 경찰조사 상황에서도 희극적인 '개그소재'가 떠올랐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대한민국은 이토록 뛰어난 코미디언을 '그냥 코미디언'으로 살도록 하지 못하는 것일까. 가슴이 먹먹해졌다.
6개월간 묻어두었던 이러저러한 김미화의 에피소드를 듣다보면 한숨도 터져 나오고 동공에 이슬도 맺히지만, 종국엔 꼭 웃게 된다. 8년째 시사프로를 진행하면서 나름 '김석희(김미화+손석희)'의 꿈도 꾼다지만 아무리 봐도 그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광대'다. 남을 웃길 때, 남과 함께 박장대소할 때, 남들이 그의 말을 듣다 배꼽을 쥘 때, 그는 가장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잘못 살아왔나 자괴감 들기도... '친정' KBS 안 밉다 - 지난 한 해 정말 구설에 많이 시달리셨는데, 돌이켜보면 어떤 것이 가장 힘들었나요?"큰 싸움을 하면서 제 인생을 돌이켜 보게 되었죠. 무엇보다도 인간관계 맺는 것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구나 싶었어요. 좋으면 그냥 친구가 되고, 바로 말도 트면서 살았는데, 아, 내가 너무 격식을 무시하고 거리감 없이 살았나, 사람에 따라 적당한 거리를 두며 살 필요도 있구나 하는 반성을 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사실, 커다란 권력 KBS와 싸울 때는, 내가 살아왔던 길 자체가 잘못된 건가,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기지? 하는 자괴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허허 웃어넘길 수 있는 남편과 주변분들, 트위터 팔로어들이 큰 위안을 주셔서 그나마 덜 상처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힘에 겨울 때도 많이 있었지만, 그런 보이지 않는 힘들이 저의 뒤에서 든든하게 버텨주었기 때문에 언론에 비춰지는 저의 모습보다는 실제로 훨씬 더 당당하게 싸울 수 있었어요. 아!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편안함, 스스로 저를 믿었던 힘, 이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절대 잘못 살아오지 않았다, 나는 정정당당하다, 이런 마음이 있었으니까요."
- 연예인 입장에서 KBS라는 거대 방송사와 맞붙어 싸운다는 것이 두렵지는 않으셨나요?"굉장히 두려웠지요. 이것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이런 심정이었어요. 전 KBS PD들과 20년 넘게 함께 일했고 방송현장에서 일하는 그들을 사랑해요. 그리고 현장 PD들은 저의 진정성을 믿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맨 위에 계신 간부들과 생각이 달라 부딪친 거라고 생각해요. 오랜 세월 가족같이 지냈기 때문에 KBS를 '친정'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사람들이 밉겠어요? 지금도 안 미워요."
- KBS가 법무팀의 소송과는 별도로 계속 사태를 풀려는 노력을 해왔다고 들었습니다. 예능국장이 몇 차례 찾아와 만나기도 하셨다면서요."예, 제가 트위터에 그 글을 올리던 첫날, 예능국장님이나 예능부장께 사정했어요. KBS에서 20년 넘게 봉사했고, 그 어느 방송국보다 KBS에 애정이 많았던 사람이다, KBS에 해를 끼치려고 한 의도가 아니라며 7~8번을 고소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드렸지요.
제가 트위터에 올린 글의 취지는 나조차도 본 적 없는 블랙리스트라는 게 정말 있는 것이냐, 제 트윗을 팔로잉하는 수많은 작가와 PD들에게 젊은 당신들은 바른 눈으로 바라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절 법적으로 조치해서 KBS가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아니 그야말로 일개 코미디언일 뿐인데 거대 방송국이 나한테 왜 이러나 정말 속상했지요."
- 결국 이 사건의 발단은 KBS노조가 4월에 폭로한 '임원회의 결정사항'인 건가요?"작년 4월 KBS노조가 '김미화도 블랙리스트인가' 노보를 낸 뒤로 많은 신문에 기사화가 됐고 여러 기자들로부터 어찌 된 일이냐고 전화도 받았습니다. 깜짝 놀랐죠. 연예인이기 때문에 'KBS 블랙리스트' 이렇게 딱 찍히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있잖아요. 하하.
그래서 제가 작년 4월 KBS 간부 한 분을 찾아가 부탁을 드렸어요. '논란의 대상이 된 연예인'이라니요, 제가 어떻게 논란의 대상이 되는 연예인입니까? 이러면 누가 절 써주겠습니까, 오해가 없도록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간곡하게 부탁드렸지요. 그런데 그로부터 4, 5, 6, 7 넉 달이 지나서 또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저로서는 이게 뭐냐 싶어서 트위터에 올린 건대,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 날 따라 시간이 남아가지고, 왜 한가해서 그걸 트위터에 올렸나 싶기도 합니다. (웃음)"
- 동료들은 주로 뭐라고 조언을 하던가요?"그래봐야 혼자만 다친다, 많이들 그러셨지요. 트위터에도 썼지만, 마치 거대한 벽 앞에 홀로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제가 기자회견 할 때 '여러분 저를 잃지 마십시오'라고 했잖아요. 어느 분은 그 말이 되게 건방진 말로 들렸다고 그러시더군요. 그러나 그건 제 마음 속에 있는, 코미디언으로 살고 싶은 절절한 호소였습니다. 그 말의 진심을 모른다면, 지가 뭐라고 저를 잃지 말래? 이럴 수 있지만, 제 진심은 정말 웃기는 코미디언으로 살다가 죽는고 싶다는 것이거든요."
- 후배들이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게 끝까지 싸울 거라고 하셨어요. 후배들 반응은 어땠나요."솔직히 우리 대중연예인들은 이 편 저 편이 아니라 다 우리 편이어야 돼요. 하하하. 무슨 소리냐면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게 가장 좋은 것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날마다 딱딱한 이미지로 TV 앞에 섰으니, 이게 얼마나 큰 손해야~.
그리고 방송국은 갑이고, 저는 을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갑한테 감히? 이게 쉽지 않지요. 무엇보다 코미디언은 늘 즐겁게 웃어야 하는데, 또 저 스스로 사회적으로 해를 끼친 일이 없는데 '논란의 대상'이 되는 연예인? 이게 좋을 리 있겠어요. 왜 하필이면 내가 이런 논란의 복판에 섰을까, 그렇지만 이런 게 시정되지 않은 채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연예인의 몫이거든요. 그래서 생각했지요. 아, 내가 찍소리라도 해야 되는 거다.
물론 제가 후배들을 위해서 뭔가 해주려고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이런 게 계속 되풀이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고쳐나가야 한다 그러면 후배들은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겠지 그런 생각은 했었지요."
- <중앙일보>는 <승승장구>에 김제동 나오고 <스케치북>에 윤도현 나왔으니 블랙리스트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주장을 한 적 있어요. KBS에서 섭외가 오긴 했나요?"에이~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고정코너도 아니고 그저 한번 출연한 건대.... 글쎄요. KBS가 저한테도 섭외요청은 했었어요. 그렇지만 KBS와 날마다 싸우면서 TV프로그램에 출연한다? 그건 좀 이상한 거 아닌가요?
싸움이 끝난 뒤에도 두 번정도 섭외요청이 있었는데, 물론 이건 윗분들의 의지는 아닐테고 담당PD 의지였던 것 같은데, 제가 아직 마음정리가 안 돼서 정중하게 사양했습니다. 그렇게 된 뒤에 KBS 프로그램에 제가 딱 나가면 마치 제가 KBS에 출연하기 위해 모든 일을 벌인 것 같잖아요? 하하."
똑같은 질문-답변 7시간씩... 화장실 가는 것도 창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