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세이집 '공책'을 낸 탤런트 공효진.
권우성
"책을 쓰기 전 자주 만나 뵙던 환경멘토가 있었는데 그분도 같은 질문을 하셨어요. 패션모델이자 배우인 내가 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느냐고요. 부모님을 떠나 저 혼자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환경실천 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고민하게 됐던 것 같고, 아주 막연하게는 중3 때 남동생, 엄마와 함께 떠났던 호주 브리즈번 유학이 계기였던 것 같아요.
제가 브리즈번에 있던 그 시절엔 쓰레기가 없고 깨끗해서 사람들이 손에 신발을 들고 맨발로 걸어 다니고, 멀쩡한 의자를 두고 바닥에 앉아 수다를 떨기도 했어요. 아무 데나 주저앉아 뭘 먹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땅바닥에 그냥 누워 있기도 했어요. 그들에겐 그 모습이 자연스러웠죠.
너무 심심해서 4년 뒤 한국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잊을 수 없는 건 맑고 깨끗한 브리즈번의 하늘이었어요. 매연으로 뿌연 서울의 하늘을 볼 때마다 브리즈번의 하늘이 그리웠지요. 어쩌면 그때부터 뿌연 서울의 하늘을 브리즈번의 파란 하늘처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브리즈번의 하늘을 우리도 갖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작은 씨앗이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수많은 환경문제 가운데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던 것은 어떤 문제예요?"제가 동물을 참 좋아해요. 어릴 때 TV 프로그램인 <동물의 왕국>을 보면 그렇게 슬플 수가 없어요. 희귀동물들이 멸종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되게 속상했고, 빙하가 녹아 북극곰들이 갈 데가 없다는 소식을 들으면 참 마음이 아파요.
문득 동네 길을 걸어가는데 다리 한쪽을 잃은 길고양이가 절룩이며 다니면 그것도 마음 상하고, 서울처럼 팍팍한 환경에서 아스팔트 사이를 뚫고 풀 한 포기 올라오는 것도 참 대견하고 감사하다 싶고 그래요. 그런데 말이에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론이 꼭 인간으로 가요. 그래, 인간이 문제다, 인간의 탐욕 때문에 온실가스, 지구온난화, 생태파괴가 일어나는 거다 싶어요."
패셔니스타가 왜 환경 책을 냈냐굽쇼?- 이름난 패션모델이라 첫 번째 책은 당연히 패션관련일 거라 생각했는데."패션 관련 책을 내자는 요청은 줄곧 있었어요. 그러나 한 번도 패션 관련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어요. 유행은 금세 지나가잖아요. 먼 훗날 내가 낸 내 책을 보면서 뭐야 이게! 유행이라고 이런 걸 갖고 책까지 냈어? 이렇게 될 것 같아서 별로 당기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 책은 제가 회사에 먼저 제안을 할 정도로 꼭 내고 싶었던 책입니다. 공효진 하면 사람들은 모두 사생활과 패션에만 관심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완전히 배제한 채 오로지 환경이야기만 담은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 임순례 감독 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찍고 바로 작업하신 건가요?"아니오. 작년 초 MBC 드라마 <파스타>가 끝날 무렵 제게 한 권의 책이 소포로 배달됐어요. 출판사 '북하우스'에서 보낸 건대 <노 임팩트 맨>이라는 책이었어요. 뉴욕 한복판에 사는 맞벌이 부부와 3세 된 딸, 그리고 그들이 키우는 개와 함께 1년간 지구환경에 전혀 나쁜 영향을 주지 않고 살아보는 프로젝트를 담은 책이었어요. 그 책을 읽고 나도 이런 책을 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지요."
- 이 책을 통해 공효진씨가 꼭 하고 싶은 환경이야기는 무엇인가요?"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환경문제가 쉽게 개선은 안 되잖아요. 왜 그럴까…. 가만 생각해보니까 다들 까먹은 척, 모른 척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다 아는 얘기지만 좀 더 감성적으로 호소하고 싶었어요. 친구한테 얘기하듯이 계속 잔소리하고 싶었어요. 엄마가 쫓아다니면서 잔소리하면 어느 날 그게 습관이 돼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환경에 관련된 좋은 습관들이 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친구들, 향후 나의 자식들까지도 습관처럼 되도록 만들고 싶어서 이런 책까지 내게 된 거지요."
- 나무젓가락 안 쓰기, 지퍼백 재활용하기, 젖은 걸 태우면 다이옥신이 배가 되니 무엇이든 말린 뒤 버리기, 밤에는 간판 조명을 꺼 달라 등등 일상 속 환경문제를 조목조목 짚으셨더군요. 주변에 반환경적 인사들이 많으신가요? 하하. "아니오. 하하. 우리나라에서 한 해 쓰는 일회용 나무젓가락이 25억 개래요. 이 정도 분량이면 남산에 나무 26그루를 심을 수 있지요. 그렇지만 우린 촬영장에선 어쩔 수 없이 도시락을 먹고 일회용품을 쓰게 돼요. 그럴 땐 그냥 주변에 큰 스트레스를 주거나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서 해요.
커피 마실 때마다 매니저에게 텀블러를 쥐어주고 사다 달라 할 수도 없고, 또 이미 종이컵에 커피를 부었는데 나는 종이컵 싫으니까 텀블러에 담아 달라고 재차 요청하기도 그렇고, 그럴 때 있잖아요, 살다 보면. 그럴 땐 그냥 주변이 불편해지지 않게 해요.
무엇보다 제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건 환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꼬시는 거예요. 하하. 아예 환경문제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조금만 자극하고 싶었어요. 이 책을 읽고 나면 며칠은 분리수거에 관심을 갖겠지, 일회용품 쓰지 않겠지, 뭐 이런 거예요.
전문가 수준으로 깊어지면 가뜩이나 환경문제에 관심 없던 사람들이 지루해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환경문제를 말하는 책이지만 사진도 많이 넣고 삽화도 많이 넣어서 딱딱하게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애썼어요."
- <공책>을 읽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한강에 음식물쓰레기통이 전혀 없다고요?"아마 편의점에서 준비한 것밖에 없을 거예요. 컵라면 국물 분리하는 거요. 생각해보면 행정 하시는 분들도 도둑고양이들이 난장수라장을 칠 수 있으니까 음식물쓰레기통을 너무 많이 만들어두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요. 또 쓰레기통이 너무 많으면 도시 미관을 해친다, 뭐 이렇게 생각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환경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자면 그건 불만이고 애로사항이 되는 거지요. 그렇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다 지적하면 사람이 지치겠죠?"
- <공책>의 주요 타깃 독자는 어떤 층입니까."환경에 무관심한 20대, 30대, 그리고 이제 막 결혼을 했거나 독립을 해서 스스로 살림을 꾸려가는 여성들, 남성들. 환경에 무관심했거나 까먹으신 분들에게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환기시켜주자는 차원에서 기획했으니까요.
이제 막 애기엄마가 되신 분들, 살림을 꾸리기 시작한 여자들이 보시고 함께 고민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여자들이 독립하는 순간 소소해지기도 하고 깐깐해지기도 하잖아요. 엄마랑 살 때는 날마다 어지르느라 정신없이 살다가 혼자 독립하면 가계부도 쓰고 어떻게 사는 게 멋진 삶인가 생각도 하고요. 환경적으로 알찬 하루를 살게 하는 지침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