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룸메이트가 남기고 간 금니
이명주
1월3일 새 룸메이트가 왔다. 이름은 료코, 일본인 여자다. 지난해 여름 교토의 미미즈카(
관련기사: 슬픈 귀무덤에서 만난 일본인 "정말 미안해요")에서 만난 아름다운 교코 아줌마가 기억났다. 어제 아침 "기왕이면 차분한 성격의 외국인이 오면 좋겠다" 했는데 바람이 적중했다. 나보다 한 살 많지만(그래서 더 좋다. 지금껏 어학원 최고령이었다!) 일본인 특유의 귀염성이 있다. 조그만 입으로 오물오물 말을 하면 괜스레 정이 간다.
전 룸메이트가 남긴 물건들은 말끔히 정리했다. 세탁만 하고 찾아가지 않은 옷가지와 그녀의 '심볼(symbol)'이었던 킬힐은 기숙사 현지 여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알람시계와 인스턴트 커피, 머그잔은 고마운 맘으로 본인이 챙겼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당황스러웠지만 버릴 수 없었던 그녀의 '금니'.
세면실 휴지통에 버리려다 생각을 바꿨다. 대다수 현지인들의 궁핍한 생활을 생각하니 분명 긴요하게 쓰일 듯 했다. 화장지에 싸서 사물함에 넣어두고 며칠 적당한 임자를 찾았다. 그리고 오늘, 평소 만남이 잦던 또다른 필리피노 여직원에 전달했다. 6개월 된 아이가 있는 젊은 엄마였는데 크리스마스 연휴에도, 새해 전야와 당일에도 종일근무를 섰다.
행여나 기분이 상할까, 괴상하게 여기진 않을까 여러 번 당부를 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건'을 건넸더니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다소 엽기스런 상황이었지만 "정말 가져도 되느냐" 누차 묻는 걸 보니 주인을 잘못 찾은 것 같진 않았다. 값어치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