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프리초프 카프라 저/구윤서, 이성범 공역) 겉그림.
범양사
프리초프 카프라가 쓴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The Turning Point, 구윤서·이성범 옮김, 범양사)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카프라는 이 과학기술 만능주의의 연원을 16~17세기 데카르트의 철학과 뉴턴의 근대 물리학에서 발견한다. 카프라는 이 시기에 탄생한 철학적 패러다임에 기계론적 세계관 혹은 데카르트-뉴턴적 세계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을 지배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그러한 패러다임이 가져온 인류사적 문제점을 설명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촉구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류는 크나큰 재앙에 직면할 거라는 것이다.
이 책은 1982년에 출판되었는데, 1970년대에 시작된 신과학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구미에서 퍼지고 있는 신생활 운동이나 녹색운동 나아가 생태보호운동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전체 4부, 12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는 카프라가 이 책의 전체 주제를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장이다. 제2부는 소위 데카르트-뉴턴적 세계관의 발전 역사를 서술하고 이 세계관이 현대 물리학에서 극적 전환을 맞이하였다는 것을 설명한다.
제3부는 데카르트-뉴턴적 세계관이 생물학, 의학, 심리학 및 경제학에 미친 막대한 영향을 설명한다. 여기에서 카프라는 데카르트-뉴턴적 세계관과 그 근저에 있는 가치체계의 한계가 우리 개인 및 사회의 건전성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제4부는 카프라의 새로운 비전이 설명된다. 이 새로운 비전에는 생명과 마음, 그리고 의식과 진화에 대한 새로이 대두하는 시스템적 견해가 담겨 있다. 여기에는 건강과 치유에 대한 전일적 접근, 경제 및 기술에 대한 새로운 개념 구조, 그리고 생태학적이며 여성적 태도로 앞을 내다보는 전망 등이 포함된다.
기계론적 세계관, 인간을 우주의 지배자로 만들다16~17세기는 서구사회에서 과학혁명의 시기다. 이 시기는 중세의 잠에서 깬 인간의 이성이 과학이란 영역에서 맹렬히 기세를 올리기 시작한 때이다. 그 시작은 16세기 초 코페르니쿠스에 의한 지동설이 문을 열었고, 이어서 케플러는 천체 도표의 연구를 통해 위성운동의 법칙을 발견한다.
그를 이어 갈릴레이는 새로 발명된 망원경을 통해 천체를 관찰하고 낡은 천문학을 여지없이 파기해 버린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을 과학적 이론으로, 그것도 수학적 용어로 표시하여 정립하였다. 그로 인해 갈릴레이는 과학적 실험법을 사용한 최초의 학자로서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서는 베이컨이 나타나 귀납적 방법론을 주장하며 과학적 사고에 불을 붙인다. 베이컨은 하나의 과학적 방법론을 제시한 것 이상으로 '베이컨 정신'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명료한 과학적 증명이 없는 어떤 사상도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베이컨 정신은 데카르트에 의해 철학적으로 완성된다. 데카르트 철학의 핵심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말에 숨어 있다. 이것은 과학적 지식에 대한 확신을 표현한 말이다. 모든 학문에서 오류를 가려내는 것이 학문의 임무라는 것이다. 단순히 가능성을 가진 모든 지식을 배척하며 완전히 알려지고 아무런 의심도 있을 수 없는 것만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과학절대주의다.
또한 그는 영혼(정신)과 육체(물질)를 철저히 구분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물질은 인간의 대상이 되었고, 영혼 없는 기계가 되어 버렸다. 카프라는 이런 데카르트의 정신·물질 이원론을 이렇게 말한다.
"
데카르트에게는 물질세계는 하나의 기계이었으며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질에는 목적, 생명 또는 정신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자연은 기계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물질세계의 모든 것은 각 부분의 배열과 운동으로 설명 가능한 것이었다."(76쪽)기계론적 세계관의 과학적 완성자는 뉴턴이다. 그는 스스로 미분법을 고안한 천재적 수학자로서 케플러의 위성운동법칙과 갈릴레이의 낙하법칙을 결합하여 돌에서부터 위성에 이르는 태양계의 모든 물체를 지배하는 일반운동법칙을 공식화하였다. 이럼으로써 '인류사에서 한 개인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과학적 진전'이라는 찬사는 뉴턴에게 돌아갔다. 뉴턴의 과학사적 기여는 자연철학을 완벽하게 수학적 원리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그는 베이컨의 귀납법과 데카르트의 연역법을 통합함으로써 기계론적 세계관의 결정판을 만들었다.
뉴턴에 의한 기계론적 세계관의 완성은 인간이 만든 과학이 자연에 대한 지배자로 등극하였음을 의미한다. 이제 과학의 목적은 자연의 지배와 조종이며, 인간은 과학적 지식으로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가 되었다. 이게 바로 기계론적 세계관의 결론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이 가져다준 영향이렇게 형성된 데카르트-뉴튼적 세계관 곧 기계론적 세계관은 16~17세기를 넘어 오늘날까지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패러다임이 되었다. 이 패러다임이 가져다 준 결정적 영향은 환원주의라는 용어로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은 기계론적 세계관이 우주를 분리된 객체로 구성된 기계 조직으로 보는데서 시작된다. 분리된 객체는 다시 기본적인 구성체로 환원되며 이들 구성체의 성질과 상호작용이 모든 자연현상을 결정한다는 우주관으로 유도된다. 부분의 집합이 전체라는 시각이다.
인간이란 육체를 생각해 보자. 기계론적 세계관에서는 인간의 육체도 생명기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육체는 여러 개의 생명기관이 결합된 전체이다. 현대의 종합병원에 수많은 전문과목이 있는 과학적 근거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육체는 수많은 부분으로 갈기갈기 찢겨 전문적으로 분석되고 이것들은 기계부품을 맞추듯 종합된다. 종합병원은 바로 이런 일을 수행하는 기관이 아닌가.
뿐만이 아니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환원주의의 칼날은 인간 생명체를 오로지 유전자의 작용에 의해서 결정되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유전자, 곧 DNA는 '유전의 원자'로서 생명체의 기본단위를 형성하는 것이고, 그 생물학적 특질의 합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유전학적 결정론으로 이어지는데 이와 같은 사고는 인간 자체도 인과에 의해 지배되는 기계로 간주하는 직접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생각을 매우 공격적으로 만들었다. 인간이 과학을 통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 이상 이런 태도는 당연한 것이리라. 개발은 무조건 선이라는 사고가 자연스럽게 생활화되었다. 세상천지가 사람들의 손에 의해 무분별하게 파헤쳐져도 그것이 성장을 위한 개발이라면 용인되었다. 4대강 사업의 철학적 기반이 바로 이것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고 그것은 상품의 대량생산으로 이어졌다. 사실 그 수많은 상품은 인간의 삶에서 꼭 필요하지도 않은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끝없이 물건을 만들어 냈으며 그 소유를 위해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돈의 노예가 되어갔다. 그러니 기계론적 세계관은 근대 자본주의 발전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황금만능주의는 기계론적 세계관이 인간의 경제생활에 준 자연스f러운 결과이다.
시스템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