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해맞이새해 첫날,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게 해주십사 했는데 참 힘들었다. 그래도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일까?
김민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서고 보니 올해가 호랑이해였다. 호랑이띠인 내게 각별하게 다가왔어야 할 해인데, 끝 무렵에 '아, 호랑이해였구나!' 한다는 것은 정신을 놓고 살아갈 만큼 우여곡절이 많은 한 해였다는 증거다. 이렇게 살고 싶어서 도시로 온 것은 아니지만, 내가 선택한 삶인데 어찌하겠는가?
연말의 악몽, 직장 상사와의 다툼
지난해 이맘때 직장 상사와 대판 붙었다. 지나간 일은 다 추억으로 남는다고 하지만, 그때 누구의 충고처럼 싸우지 않고 지금까지 그곳에 있었다면 아마도 '암'으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심각했던 상사와의 갈등은 연말에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사표를 내고 행정 처리되는 과정은 새해로 넘어갔기에 1월 1일을 예비실직자로 맞이했다.
겉으로는 초연한 척했지만,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도시의 40대 후반의 가장이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생명줄을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1월 1일, 새해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한해를 맞이했고, '좋은 일 많이 생기게 해주십사' 기원을 했다.
봄이 시작될 무렵, 몇 년 동안 일하던 직장을 떠나 프리랜서(?) 생활도 하고, 실업급여도 받아보고, 택시회사까지 기웃거려보았다. 폐지 경쟁에 뛰어들까 생각도 했지만 결국 그리하지는 못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직장 상사에 대한 미움마저도 측은함으로 바뀔 무렵 나는 지금 일하는 직장의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은퇴할 때까지 이 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렇게 다시 일터를 찾고 나니 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상사가 아무리 더럽게 굴어도 그냥 속 끓이지 마라'고 조언하고 싶다. 상사에 대한 복수는 들이받고 사표를 내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곁에서 함께하는 것이다. 웃으면서 화내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정글사회에서 살아남는 비결이다.
실업자 생활을 하면서 삶이 깊어지다 막상 실업자 생활이 시작되니, 직장에 다닐 때 하고 싶었던 일들도 무미건조해졌다. 일에서 해방되면 산야 곳곳을 다니며 들꽃사진도 담고, 여행도 하고 싶었는데 막상 '시간이 있으니까 돈이 없는' 상황이 시작되었다. 실업급여도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교육도 받고 이런저런 증명서도 제때에 제출해야 하니 어디로 휑하니 떠나기도 쉽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대형서점에서 책읽기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출퇴근하는 이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도시에서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도 뼛속 깊이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