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 15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은 명함입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젠 이 명함도 며칠 있으면 필요없습니다. 새로 할일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많이 섭섭한 건 어쩔 수 없네요.
강충민
15년 다닌 직장 그만 두는 얘기를 하려니, 제 이십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저의 첫 직장은 특급호텔이었습니다. 호텔리어였죠. 국문과 나왔다고 나름 존재감도 있었고 무엇보다 제 적성에도 맞았습니다. 그렇게 직장생활은 순탄하게 계속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 맘 깊숙이엔 '빨리 제주도를 도망쳐야지'하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정말 미치도록 제주도란 섬이 갑갑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지금도 윤흥길의 소설 <꿈꾸는 자의 나성>으로 그때의 제 심리를 자주 표현합니다. 매일 다방에서 LA행 비행기표를 구하는 사내가 꼭 제 모습을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저녁 아홉시가 넘으면 '아 오늘도 갇혔구나'하고 탄식을 하곤 했습니다. 그 당시 제주에서 육지로 나가는 마지막 비행기가 저녁 아홉시였지요. 저는 나고 자란 고향 제주도를 너무도 지겨워하고 있었습니다. 아 고백하건대, 그때 저의 나성은 '서울'이었습니다.
3년이 지나면서 그 강도는 더 세졌고 제빵기술을 배운다는 구실을 달고 드디어 제주도를 도망쳤습니다. 소설 속 사내와 달리 저는 나성 가는 비행기표를 구했던 것입니다.
그 후 6개월은 극단적인 경험의 연속이었습니다. 중랑구에서의 첫 서울 생활은 빵집 주방막내로 시작해 채 두 달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통째로 건물이 팔리며 주방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당연히 설거지 담당이던 저까지 감당하기엔 벅찼겠지요. 그런데 전 어쩌면 그 상황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가게나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 그것입니다.
지금에야 평생 하지 못할 경험이었다고 얘기하곤 하지만 솔직히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됐을까'를 거의 매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심야영업하는 술집을 찾아 밤새도록 마셔댔고(그때는 영업시간제한이 있었습니다), 돈이 떨어지자 룸살롱 웨이터를 하기도 했습니다. 계룡산의 작은 암자에서 2주일 동안 출가를 고민했습니다. 제주도 내려오기 직전엔 구로동 점집에 들렀다가 신아들 삼겠다는 제의에 실제로 내림굿 날짜를 잡아놓고 점사도 봐주며 굿당을 들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이 정해진 운명 때문이다 생각하며 말이지요.
우연히 연락이 닿은 친구와 신촌에서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전철을 타기 위해 지하도로 내려가고 있었고 곧이어 열차가 진입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에 사람들은 뛰기 시작했고 엉겁결에 저도 같이 뛰었습니다. 한 무더기의 사람들 틈에 섞여 전철을 향해 뛰기 시작하다 순간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아, 난 바삐 갈 데가 없구나. 서울에 집이 없구나....' 전 혼자 비켜서 벽에 기대었고 스르르 주저앉았습니다. 서러운 눈물 한 방울 흘렀습니다. 저는 서울특별시민의 한 자리를 차지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서울은 제게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습니다.
"아 집에 가고 싶다." 그 길로 바로 김포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한 시간 후 전 제주도에 내렸습니다. 저의 이십대는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한 직장, 한 사장 밑에서 15년...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지겨워하던, 도망치고 싶었던 제주도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달리 보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비로소 제 고향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오히려 어쩌다 한 번 가는 서울은 더 이상 저에겐 맞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지하철은 더 더욱... (결코 서울 탈락자의 변명은 아닙니다.) 시민단체에 가입한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심한 열병을 앓고 제자리로 돌아온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제주도에 다시 내려온 후 지금의 사장님과 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학원사업을 하다 2년 후 여행사로 업종전환을 하고 지금까지입니다. 햇수로 15년이 되었습니다. 한 직장 한 사장 밑에서 말이지요. 바람 같은 제가 말입니다.
이직, 퇴직이 심한 여행업계에서 아주 바람직한 경우였고, 저희 회사하면 저를 같이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아주 좋은 이미지로 말이지요(물론 저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장님과 저는 아주 원만한 노사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그 15년 동안 각시를 만나 결혼을 했고 아들 원재, 딸 지운이가 생겼습니다. 집도 장만했고요. 제주도 여행업계에서 웬만한 사람은 다 저를 아는, 그야말로 베테랑이 되었습니다. 맞벌이 하는 각시와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한 판 붙을 때도 있지만 마흔넷 중년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안정까지는 아니라도 작은 것에 행복하고 감사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