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신
- 파트타임 증가가 네덜란드 고용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여성의 노동시장 참가가 증가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네덜란드의 노동규범을 바꿨다고 할까. 연구 결과를 보면, 파트타임은 어머니들이 많이 사용한 제도인데, 이제는 젊은 청년들이 자식 유무와 상관없이 사용하는 제도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네덜란드 1인당 GNP는 4만 달러가 조금 넘을 정도로 상당히 높은데다가 누진적인 세금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1일을 더 일한다고 해서 얻는 실질소득이 늘어나지 않는다. 소득은 어느 정도 수준에 있기 때문에 차라리 하루 덜 일하고 취미생활, 교육 등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 노동시장의 변화는 세대차이에서도 비롯됐다는 느낌이 든다. "맞다. 지금 50대, 60대만 해도 여성은 집에 있고, 남성이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것이 주형태였다. 이제는 남녀가 모두 일하되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FNV와 여성학자들은 2.4제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잇다. 둘이서 4일 근무하고 나머지는 아동보육과 가사노동을 하는 데 써야 한다는 것이다."
- 그러면 국가가 굳이 보육의 질을 높이려고 하지 않겠다. "그게 네덜란드에서 큰 문제다. 지난 6월 아주 보수적인 정부를 뽑았는데, 그 정부가 보육시설 지원금을 줄이려고 한다. 부모들에게 보육을 국가에서 제공하는 게 아니라 보육시설을 사용할 때 그 비용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데, 그 지원금을 많이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이들이 부모와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녹색당이 이번 선거 이후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 정당이 보육시설 지원금 삭감 반대 캠페인을 엄청나게 벌이고 있다.
네덜란드는 보육시설이 광범위하게 지원되는 국가가 아니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은 80~90% 이상의 좋은 보육시설을 가지고 있다. 이들 국가는 아이들이 집에 있는 것보다 보육시설에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육시설에 일찍 보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최대한 집에 있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보육시설도 썩 좋지 않다. 0세부터 3세까지 다니는 보육시설율이 아동수에 비하면 16%밖에 안 된다.
게다가 아이를 주 5일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이 없다. 그런데도 경쟁이 부모쪽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보육시설의 질을 높일 필요성이 없다. 그래서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파트타임이 정말 자기 필요에 의해 하는 것인지, 어쩔 수 없는 보육 의무 때문에 파트타임이 필요한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
- 보육문제 때문에 파트타임을 선호하게 된 것인가, 아니면 파트타임을 선호하다 보니 국가가 보육시설에 투자를 안 하는 것인가?"재정적자를 20~30% 줄이라고 하기 때문에 수많은 정책 중에서 문화와 보육분야에서 예산을 많이 줄이고 있다. 연금이나 의료는 정치적으로 삭감하기 어려워서 보육 등에서 삭감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손쉬운 분야라서 그렇다."
- 네덜란드에서는 풀타임과 파트타임 간에 차별이 없다고 들었다. "시간당 임금, 부가급여, 휴가, 훈련 등에서 차별이 없도록 법으로 제정되어 있다. 다만 파트타임이기 때문에 풀타임만큼 임금이 늘어나기는 어렵다. 관리자급으로 일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연구결과를 보면, 파트타임은 저임금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다른 국가에 비하면 네덜란드는 상대적으로 파트타임의 임금이 낮은 수준은 아니다. 산업별·직업별로 봤을 때 파트타임이 균등하게 분포돼 있기 때문에 현격한 차이가 보이지는 않지만, 조금 차이가 있긴 하다.
특히 장기적인 차원에서 볼 때 약간의 차이가 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파트타임이기 때문에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보다 먼저 진급할 수는 없을 것 아니냐? 그런 정도의 차별은 받고 있다."
- '정규직 파트타이머'라는 용어가 있을 법하다. "거의 모든 파트타임은 정규직이다. 영구계약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파트타임을 임시직과 같은 근무형태로 보는 것에 상당히 반대하고 있다. 파트타임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이다. 특히 자발적으로 풀타임과는 다른 근무형태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 한국에서는 파트타임을 비정규직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파트타임은 전혀 다르다. 한국은 저임금·저숙련이고, 임금 등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건 비정규적으로 보는 게 맞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파트타임을 늘리려고 하는 것 같다."
- 하지만 네덜란드처럼 풀타임에 가까운 파트타임이 될지 의문이다. "한국은 노동시간을 정상화하는 게 우선적인 과제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시간당 임금이 상승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부가급여를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주당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생산성이 높아진다. 40~50대의 수많은 질병퇴직은 과도한 노동시간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파트타임을 도입하는 전에 우선 노동시간을 정상화해야 한다."
"하루의 자유가 더 매력 있다고 생각해 파트타임 선호"- 네덜란드에서는 파트타임의 증가가 고용불안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나? "그렇다고 볼 수 없다. 많은 경우 영구직이고, 여성들은 자발적인 파트타임이기 때문이다. 고용불안으로 문제가 된 적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고용불안보다 관계불안이다. 남성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고, 특히 이혼이나 배우자 사망시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네덜란드 여성들이 일하는 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
- 네덜란드 노사는 여성의 파트타임 노동시간 증가에 동의하고 있더라."특이한 점은 국민들, 특히 여성들의 지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장시간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면 세금도 많이 들어오고, 고령화 추세에 따른 인력부족현상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용자쪽도 여성들의 노동시간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있다. 그런데 네덜란드 국민들은 국가가 개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바세나르협약은 정부가 정책이나 법으로 개입하려고 한 것에 대응한 결과물이다.
네덜란드 노사는 '우리끼리 협약해서 해결하면 국가가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해서 협약을 맺어왔다. 다른 세력이 왈가왈부하지 못하도록 노사가 먼저 협약을 하는 것이다. 그런 관계였기 때문에 '국가에서 왜 개인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늘리는 것에 개입하려고 하느냐'며 상당히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에서 여성 노동시간 증가와 관련해 문화적인 캠페인에 가장 힘을 쏟고 있다. (앞서 언급한) 그런 의식을 바꾸기 위해 캠페인을 많이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 파트타임의 대부분은 여성들이고, 남성 중에서도 저숙련·저학력 노동자들아 파트타임으로 근무하지 않나? "꼭 그렇지 않다. 남성은 저숙련이라기보다 35세 이하 젊은 층에서 파트타임을 많이 선택하고 있다."
- 나이와 상관이 있지만, 숙련도나 학력수준과는 상관없나?"그렇다."
- 그런데 파트타임으로 근무해도 생활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네덜란드 사람들은 꿈도 생활도 아주 소박하다. 국회의원이나 대학의 정교수도 다 낡아빠진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그게 효과적이기 때문인데, 네덜란드 사람들은 효과에 예민하다. 차 타고 주차할 시간에 자전거 타고 가면 금방 가니까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거리에서 크고 고급스런 차를 봤나? 그리고 네덜란드의 임금 수준 자체가 상당히 높다. 1980~90년대에 임금이 동결된 해가 많긴 했지만 임금 수준은 상당히 높다. 그리고 파트타임을 권리화하면서 임금 수준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그로 인해 주어지는 하루의 자유가 더 매력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파트타임을 많이 선호한다.
틸버그대 사회학과장이 50세가 조금 넘었다. 결혼을 늦게 해서 서너 살의 아이를 두고 있는데, 그분은 주4일 근무한다. 그중 하루는 집에서 근무한다. 하지만 1년에 10개의 논문을 저널에 발표하는 등 생산성이 높다. 불이익 등이 없기 때문에 주 4일 일하는 게 나쁘지 않다. 한국에서 주 4일 근무하는 것과 비교하면 안 된다. 주 3일, 4일 근무하는 것을 적용하기에는 두 나라의 격차가 너무 크다. 그래서 주 5일 근무라도 제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네덜란드식 파트타임이라면 우리도 근무하고 싶을 텐데, 이것은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하니까 가능한 것 아닌가?"그런 측면이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 중에 '남자는 4~5일, 여자는 1~2일 근무하는 것은 남녀불평등이다, 여성의 남성 의존도를 높이고 여성 인적 자원을 버리는 것이다, 왜 여자는 집에 있어야 하나'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네덜란드 남녀관계를 보면 여성이 우세하다.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여성들이 남성들을 5일 근무하게 만든다.' 여성들이 자신은 집에서 느긋하게 애 키우며 살기 위해 남편은 5일간 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 파트타임으로 인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것인가? "그것은 컵이 반쯤 비었다고 볼 것인지, 반이나 차 있다고 볼 것인지의 문제와 같다. 1980년대에는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가 거의 없었다. 미혼여성이 참여하거나, 이혼하거나 배우자가 사망했들 때 선택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30년간 75%까지 여성 고용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엄청난 성과다. 이런 여성 고용율 증가를 보인 나라는 없다. 반면 '풀타임이 아니라 파트타임이기 때문에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받아들일 만한 정책인가? 그런데 기본적인 조건이 다르다.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평균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이고, 한국은 제일 높은 나라다. 네덜란드에서는 올해부터 '뉴 워크'(New Work)라고 해서 노동시간 자율성과 재택근무 자율성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새로운 근로형태를 자기가 알아서 선택해 일을 한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할 수 있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시각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 보수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뉴 워크'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나?"그렇다. 물론 그 전부터 위원회가 설립되는 등 움직임이 있었다. 이런 정책은 우파든 좌파든 큰 변화가 없다. 네덜란드에는 한 도시에 근무하면서 다른 도시에 사는 경우가 많다. 교통체증, 공기오염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환경부에서도 이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연구결과를 보더라도 재택근무가 특별히 악효과가 있다고 나오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줄이면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파트타임과 재택근무 등은)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똑똑한 경영자라면 유한킴벌리 사례 등을 보고 생각 바꾸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