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박하(Bac Ha) 꼭리(Coc Ly) 시장의 사춘기 소녀 -의상이 참 곱다.
손희상
어머님,
화요일 아침,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라오까이로 내려가 하노이로 가려고 하니, 집 앞에 오토바이 아저씨가 저를 불러 세워서는 '마켓(MARKET, 시골장)' '뷰티풀(BEAUTIFUL, 아름답다)'하며 두 개의 언어를 되돌이표 마냥 반복하고 있습니다. 저는 긴가민가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그는 '뷰티풀'을 강조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박하의 일요시장에서는 다양한 산나물과 물소를 볼 수 있다고 하며, 박하에서 35km 떨어진 꼭리(CocLy) 시장은 다양한 색상을 한 소수민족을 볼 수 있으며, 그 시장을 찾아가는 길이 산길을 돌아가는데 무척이나 예쁘다고 하였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는 느낌으로, 오전에 잠시 다녀오고 오후에는 라오까이로 내려가 밤 기차를 탄다는 생각으로 그의 말을 오래도록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습니다. 뭐 볼 게 있느냐는 듯이 한 걸음 물러서서 그의 흥정을 이끌어냅니다. 나흘 정도 시간이 흐르니 제 마음에 여유가 생겼나 봅니다.
어머님,
신기하게도 두 마디의 영어로 모든 의사소통이 이루어졌으며, 전 '노(NO) 뷰티풀'이면 차비를 반만 주겠다며 그의 오토바이 뒤에 오릅니다. 아저씨는 싱글벙글하며 저를 태우고 달려갑니다. 도로를 벗어나자, 산기슭에 띄엄띄엄 집이 있으며, 무소 등에 올라앉은 네다섯 살 꼬맹이가 제집으로, 이른 아침 찾아들고 있습니다. 어쩜 사파보다 여기가 더 자연스러운 북베트남의 풍경이 안겨오는 듯합니다.
오토바이 뒤에서 박하의 진한 시골 길을 질주하고 있습니다. 박하에서의 소수민족은 정말 산 구석 구석에 큰 마을을 만들지 않은 채, 한두 채의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웃집에 놀러 가는 길이 열 걸음은 넘을 듯합니다.
아저씨는 저를 태우고 산길을 한참 달려가더니, 아침 먹고 가자며 저를 어느 집 앞에 내려 주십니다. 아마도 1시간 정도를 달려온 듯한데, 이곳을 잘 아시는지 허름한 집에 들어가서는 술이며, 아침을 주문합니다. 길옆에 놓인 나뭇집입니다. 식당이라 하기에는 준비된 것이 없으며 방안은 전등이 없는지 어두컴컴하며, 판자 사이로 햇살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분명히 작은 탁자 위에는 술이 올려져 있고, 몇 분의 손님이 끼니를 때우고 있습니다. 아저씨는 베트남 술을 제게 한 잔 건네주시고, 옆에 계신 분도 한 잔 건네주시고, 옆에 밥을 먹든 젊은 청년이 신기한 듯, 우리 곁에 다가와 이런저런 얘기를 술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모두 저와 카메라를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빈속에 아침부터, 허름한 집에서, 베트남 사람과 술 마실 줄은 미처 생각도 못했습니다.
어느 여행 책에도 이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주인아저씨가 금방 손질한 국이 나오자, 아저씨는 두 팔을 파닥거리며 하늘 나는 새를 가리킵니다. 무슨 맛인지도 모른 체, 분위기에 취해, 진짜 베트남 삶으로 들어왔다며 혼자 들떠서는 술을 연방 받아 마십니다. 장날 구경을 하기도 전에 취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이 걱정은 옆 젊은이로 옮겨졌고, 젊은이는 처음에 한 참 떠들며 술을 마시더니, 혼자서 헤롱헤롱 거리며 밖으로 나가 버립니다. 얼떨결에 아침을 먹고서는, 장 보기 위해 오토바이에 다시 오릅니다.
노점은 조그마한 언덕 위에 펼쳐졌는데, 그저 귀엽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정말 인위적으로 꾸민 것은 없으며, 이 장이 파하면 아무것도 없는 길모퉁이 언덕으로 보일 것입니다. 장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온 고산족 사람들이 모여들어 물물 교환 수준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네들은 오토바이가 없으면 어찌 움직이지 못할 듯합니다.
또한 고산족네들이 농사를 많이 지어서인지 농기구가 많으며, 사진을 찍어주는 이도 있는데… 아마도 그는 오늘 찍어서 다음 장날에 사진을 인화해 오지 않을까 합니다. 아침을 제가 사 주었다고, 아저씨가 음료수를 건네주십니다. 우리는 5분여이면 다 볼 장거리를 두어 시간 째 멈춰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