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 청해진 유적지
성낙선
장도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나온 한 부자를 만났다. 나를 보더니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두 사람이 함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참 다정해 보인다. 장도에서 바로 건너다보이는 마을에 사는데 이렇게 가끔 장도로 자전거를 타러 온단다.
서로 몇 마디 인사가 오가지 않았는데, 아버지 되는 사람이 내게 바나나를 하나 건넨다. 바나나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비상식이다. 자전거를 타는 도중에 에너지가 필요하다 싶을 때, 열량을 보충하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음식 중에 하나다. 그걸 나눠 먹는 데는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돼 있다. 그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서 먹는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바나나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늘 먹던 바나나와 다를 게 없을 텐데, 이전에 먹어본 바나나와 달리 단맛이 진하다. 서울에 돌아가서는 다시 이 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장도 청해진유적지를 나와서 그들 부자와 헤어진다.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멀어져가는 아버지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본다.
완도를 나오면 다시 해남군이다. 해남군에 들어선 지 며칠 짼데 아직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전체 땅 면적은 크게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니어도, 해안선만 놓고 보면 다른 나라의 넓은 땅이 부럽지 않은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덕분에 아무리 열심히 돌고 돌아도 여전히 제자리다.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놀던 기분이 이랬을까?
해남군에 들어서서는 바로 55번 지방도로로 올라선다. 원래는 해안 길로 들어설 생각이었는데, 그만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어 내륙의 번잡한 도로를 자동차들과 함께 달리게 됐다. 그 바람에 쇄노재라는 제법 높은 고개를 넘는다. 그런데 그동안 해안 절벽 길을 숱하게 오르내리면서 단련이 된 까닭인지 그 높은 고개를 크게 힘들이지 않고 넘어간다.
내륙으로 북일면 깊숙이 들어갔다가 다시 해안 길을 찾아 내동리 쪽으로 방향으로 꺾는다. 내동리를 지나 사내방조제를 넘으면 거기서부터는 강진군이다. 비로소 해남군을 벗어나게 된다. 다소 홀가분한 기분이다. 홀가분한 마음을 갖게 만든 것은 단지 해남군의 경계를 벗어난 데에만 있지 않다.
사내방조제를 넘어 강진만을 따라 만의 끝까지 올라가는 해안도로는 지금까지의 해안도로와는 완전히 다르다. 만의 끝에 위치한 강진읍까지 곧고 평탄한 길의 연속이다. 게다가 자동차들도 거의 다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