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갈두선착장에서 바라본 풍경. 멀리 해안가 산 중턱으로 도로가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저 길을 달려가야 한다.
성낙선
땅끝을 떠나 완도 가는 길, 남성리라는 마을을 지나가는 절벽 위 도로에서 내려다보는 바닷가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마을 앞에 포구가 있고, 포구 앞 바다에 소나무를 이고 선 작은 바위섬이 홀로 떠 있다. 당연히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사진을 몇 장 찍지 않아, 카메라에 메모리 카드가 가득 찼다는 메시지가 뜬다. 아뿔사, 그 사이 이틀이나 메모리 카드를 비워 놓는 걸 잊었다. 하루 2기가 정도의 사진을 찍으니까, 4기가 용량밖에 안 되는 메모리 카드를 어제는 비워 놓았어야 했다.
할 수 없이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컴퓨터를 켜고는 메모리 카드에 있는 사진을 옮겨 담는다. 이 작업은 다행히 도로에서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넓은 공간이 있어 가능했다. 사진 옮겨 담는 작업을 하느라 미처 알아채지 못했는데, 그새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마을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곁에 다가와 있었다.
풍을 맞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할머니의 말이 '뭐하냐', '어디서 왔냐' 등으로 시작해 '힘들지 않느냐', '이제 어디로 갈 거냐'는 말로 이어진다. 한동안 참으로 느리면서도 긴 이야기가 계속된다. 그러는 사이 마을 할머니 두 분이 더 나타나더니 그때부터는 중구난방 맥락이 없는 이야기판이 벌어진다.
그 할머니들 덕에 앞바다에 떠 있는 바위섬이 '감투섬(지도에는 감토도라고 표기되어 있다)'이고, 바다를 온통 뒤덮다시피한 부표가 전복양식을 위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전복양식을 얼마나 크게 하는지, 지금은 마을 젊은이들이 모두 전복 양식에 매달리고 있고 그 바람에 마을 앞바다에서 아직도 고기가 많이 잡히는데도 고기를 잡으러 나갈 새가 없다는 말도 들었다.
헤어질 때가 돼서는 할머니들한테서 조심해서 가라는 말과 함께 힘들 텐데 잘 먹고 다니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분들의 음성과 표정이 먼 길을 떠나는 자식을 배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 역시 마치 고향마을을 떠나는 것 같은 서운한 감정에 젖는다. 이럴 때는 내 나라 내 땅에서 여행을 한다는 게 결국엔 오래전에 잊힌 내 고향을 찾아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온 마을이 어릴 적 내가 살았던 고향마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