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 영정.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내면적 아름다움의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칭송하고 이를 정치논리로까지 악용하는 분위기 속에서 꽃미남 열풍이 형성될 여지는 거의 없었지만, 그렇다고 꽃미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도 결코 아니다. 사회 분위기 때문에 공공연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해도, 선비들을 포함해서 많은 백성들이 꽃미남에 대한 높은 관심을 표출하곤 했던 것이다.
성균관의 제도와 문화에 관해 220수의 시를 남긴 윤기의 시에서도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윤기의 시 중 '장의(掌議)가 향석교에서'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시에 따르면, 밖에 나갔다가 성균관으로 돌아오는 장의 즉 학생회장를 맞이할 때에 "용모가 아름답고 복장이 깨끗한" 칠팔 명의 어린 하인들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성균관 의식에서도 미소년들이 특별히 동원되었던 것이다. 꽃미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아예 없었다면, 이런 문화가 생겼을 리 없다.
제22대 주상('왕'의 공식 명칭)인 정조의 등극에 결정적 역할을 한 홍국영 역시 '꽃미남'이라는 이유로 출세를 한 인물이다. 그가 제21대 주상인 영조 때부터 두각을 보인 데에는 외모가 중요한 작용을 했다.
영조 48년(1772) 9월 21일자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과거합격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시력이 나쁜 영조가 승지(비서)에게 "(홍국영의) 용모가 어떠하냐?"고 묻자 승지는 "매우 준수합니다"라고 답했다. 영조가 이런 질문을 한 것은 그가 사람을 볼 때에 얼굴 생김새를 중시했기 때문이라는 점은, 영조의 며느리인 혜경궁 홍씨가 남긴 <한중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조가 홍국영을 총애한 이유를 두고, 혜경궁은 "동궁(세자, '정조' 지칭)과 나이가 비슷하고 얼굴도 예쁘고 기지가 있고 민첩"하기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대표적 실학자인 박지원이 남긴 중국 여행기인 <열하일기>를 읽다 보면, 그가 꽃미남에 대해 보통 이상의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청나라의 어느 골동품 가게에 가봤더니 동업자 다섯 명이 "모두들 젊고 아름다웠다"고 한 대목도 있고, 중국인과 필담을 하는 중에 "미소년 하나가 들어와 찻잔을 받들어 (내게) 권했다"고 한 대목 등등도 있다. 박지원이 남자를 관찰할 때에 미모를 중요한 요소로 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속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박지원이 실학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솔직하게 글을 썼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열하일기> 속에서 박지원은 기존 가치관과의 충돌이 예상되는 대목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강력히 변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꽃미남에 대한 관심을 표출하는 대목에서는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박지원은 꽃미남을 선호하는 자신의 모습이 기존의 가치관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음을 알 수 있다.
<한중록> 곳곳에서 자기 집안뿐만 아니라 영조와 사도세자의 체면을 유별나게 옹호한 혜경궁 홍씨도 '영조가 홍국영의 예쁜 얼굴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기록을 남긴 것을 보면, 꽃미남에 대한 관심을 표출하는 일이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박지원이 꽃미남에 대한 관심을 솔직하게 표출한 것은 그가 실학자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위와 같은 사례들로부터, 외면의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과소평가한 주자학적 풍토 속에서도 조선시대 사람들이 꽃미남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표출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나 과거의 대리국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조선시대에도 남자의 외모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존재했던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건 간에, 일상생활 중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그다지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한두 번의 만남으로 상대방에 대한 평가를 끝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상대방의 외모를 일차적 판단기준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은 데에는 그런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외모지상주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인간사회의 화두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모든 성인군자들이 다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와 관련하여 공자의 메시지를 한번쯤 참고하는 것도 바람직하리라 생각한다. 공자는 '내면만 추구하고 외면을 경시하는 것은 촌스러운 일인 반면에, 외면만 추구하고 내면을 경시하는 것은 성의가 부족한 것'이라면서, '양쪽의 조화를 이루어야만 진정한 군자 즉 이상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내면과 외면의 균형을 추구하는 사회야말로 진정으로 아름다움을 아는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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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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