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이시 고등법원장
눈빛<대한국인 안중근>
나는 다시 청하기를 "만일 허가될 수 있다면 <동양평화론> 에 대하여 책 한 권을 저술하고 싶으니, 사형집행 날짜를 한 달 남짓 늦추어 줄 수 있겠는가?" 했더니 고등법원장이 말하기를 "어찌 한 달뿐이겠는가? 설사 몇 달이 걸리더라도 특별히 허가하겠으니 걱정하지 말라" 하므로 나는 감사의 뜻을 전하고 돌아와 항소권을 포기했다.
설사 항소한다고 해도 아무런 이익도 없을 것이 뻔할 뿐더러, 고등법원장의 말이 과연 진담이라고 하면 굳이 더 생각할 것도 없어서였다. 그래서 <동양 평화론>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서문(序文), 전감(前鑑), 현상(現狀), 복선(伏線), 문답(問答)으로 나눠져 있는데 그 가운데 서문과 전감만 집필하였을 뿐이고(전감 부분도 미완성으로 짐작), 나머지는 미완으로 끝났다. 히라이시 고등법원장의 약속과는 달리 사형 집행이 연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미완으로 끝났지만 안중근이 쓰고자 했던 내용을 당시 통역이었던 소노키 스에요시(園木末嬉))에게 알려줘 그 기록이 남아 있어 그 대의(大意)를 짐작할 수 있다.
그 내용은 러시아가 동양의 중심지며, 항구도시인 뤼순을 빼앗고, 또 이것을 일본이 빼앗고, 또다시 언젠가는 중국이 도로 찾으러 할 것이니, 뤼순은 동양 각국의 분쟁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차라리 이곳을 영세 중립지대로 만들어 그곳에 아시아 각국에서 정부를 대표하는 사람을 보내어 아시아 평화를 위한 상설위원회를 만들어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장래의 발전을 도모케 할 것과 각국은 일정한 재정을 제공, 개발은행을 설치하여 어려운 나라를 위한 공동개발의 자금으로 쓰게 하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또한 이 위원회가 동쪽 끝에 있는 점을 감안하여 로마 교황청도 이곳에 대표를 파견케 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이는 이 위원회가 국제적 승인과 영향력을 얻게 하려고 한 것인 바, 오늘날 유럽에 EU가 결성되고 환태퍙양 국가들이 APEC을 만든 것과 일맥상통한다. 안중근은 이미 100년 전에 이런 구상을 한 대사상가요, 경세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