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롄 거리의 전차
박도
"다롄은 요동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원래는 자그마한 어촌이었는데, 그 규모가 확장된 것은 19세기말 러시아가 이곳을 조차(租借)하여 항만시설을 건설한 뒤부터였습니다. 그 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에 따라 그 이권이 일본에 승계되었습니다. 이 도시를 여러 나라가 눈독을 들인 것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 부동항이기 때문입니다." 날이 저물어 제8일 답사를 거기서 마무리했다. 박용근씨는 당신 집이 뤼순 부근이라며 시간 단축을 위해 다음날 아침 8시까지 택시기사를 내 숙소까지 보내기로 했다.
안중근 행장 (21)1909년 11월 1일, 검찰관 미조부치 다카오는 안중근 등 9명에게 구류장을 첨부하여 오전 9시에 관동도독부의 헌병대에 신병을 인도하고 이들을 뤼순감옥으로 호송하였다. 뤼순으로 호송된 9명은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정대호, 김성옥, 김려수, 김형재, 탁공규 등이었다. 그들 외 하얼빈에 남은 김성화, 정서우 등 6명은 모두 무혐의자로 석방되었다.
오전 11시 안중근 등 9명은 헌병의 삼엄한 호위 가운데 하얼빈 역을 출발하였다. 호위병 가운데 헌병 상등병 치바 도시치(千葉十七)는 달리는 열차 안에서 안중근을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그는 육군에 징병되자 헌병을 지원하여 직업군인이 되었다.
그가 10월 27일, 하얼빈 출장 명령을 받았을 때는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범인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데 호송 중 열차 안에서 본 안중근은 평온한 표정에 사람을 감싸는 듯한 분위를 풍기는 데다 전혀 비굴치 않는 그의 태도에 적개심은커녕 점차 매료되었다.
- <광야의 열사 안중근> 197~198쪽
이토 히로부미 행장 (3)1909년 10월 26일 오전 11시 15분 러시아 군악대의 장송곡 속에 하얼빈을 떠난 이토 히로부미의 영구(靈柩, 시신을 담은 관)는 10월 27일 밤 다롄으로 이송되었다.
10월 28일 오전 이토 히로부미의 영구는 본국에서 급파된 군함 <아키쓰시마(秋津州)>에 실렸다. 이 군함은 이토 히로부미의 영구를 싣고 다롄 항을 출항하여 간몬해협을 경유하여 10월 31일 밤 요코스카(橫須賀) 항에 입항했다.
11월 1일 오전 11시 요코스키 진수부(鎭守府, 해군) 군악대가 장송곡을 연주하는 가운데 히토 히로부미를 실은 6량의 특별열차는 신바시 역(新橋驛)으로 행했다. 다음 날 오후 1시 히토 히로부미의 영구를 실은 특별열차는 기적소리도 없이 신바시 역에 조용히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