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오마이뉴스 기자
남소연
김종철 : 우리가 볼로냐에서 취재를 하는 동안, 국내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이 화두가 됐었다.
정태인 : (고개를 절레 흔들며) 정권이 무서우니까 대기업들이 말을 좀 들을지 모르겠지. 우리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이 망하면 중국에서 납품 받으면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에밀리아에서는 '상생'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이곳에선 작은 기업들이 서로 뭉쳐서 협동조합을 만들고,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경쟁력을 키워 나간다. 왜냐면 혼자서는 프로젝트를 따내고, 기술 발전을 이루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있다. 우리나라에선 아파트 분양가 거품 문제가 심각했다. 이같은 대기업 건설회사들의 횡포를 막으려면 소비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직접 아파트를 지으면 된다. 볼로냐의 주택소비자협동조합에서 지은 집은 기술력도 떨어지지 않고 원자재도 좋은 것을 쓰면서 신뢰를 쌓았다. 그러면 굳이 분양원가 공개 운동을 할 필요도 없다. 각종 사회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국가가 모든 것을 하기보다 민영화할 때 협동조합을 통해 하는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
정원각 : 볼로냐의 시청 신청사는 건설협동조합에서 지었다. 스페인 몬두라곤의 경우도 건설협동조합이 구겐하임 미술관과 쌍둥이 빌딩을 지었다. 중소 건설기업들 스스로 연대하면서, 네트워크를 통해 기술을 쌓으면서 건설 시장에서도 이들 협동조합이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김종철 : 테스토니를 취재했을 때 그곳 전문경영인이 기업 활동의 목적을 '매출 확대가 아니라 이탈리아 정신의 확산'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일반 사기업에도 이런 정신이 깔려있다는 게 인상 깊었다.
정태인 : 협동조합 존재로 인해 주식회사의 사업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분명 둘 사이에 상호성이 있을 텐데 이것도 살펴볼 만한 주제다. 기업이 레퓨테이션(평판)의 통제를 받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기업이 비리를 많이 저질러도 경제를 먹여살린다는 인식 때문에 용납하고 넘어가자는 주의다. 기업의 레퓨테이션이 상품을 고르는 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협동조합의 역할이 강한 곳은 협동조합의 사업 방식이 다른 기업의 반 사회적 행위를 막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에밀리아 모델을 우리나라에도 이식할 수 있을까김종철 : 지난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자본주의 대안으로 협동조합 모델, 연대와 협동의 경제, 사회적 경제를 말하기도 한다(자마니 교수).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나라에서도 이식이 가능할까.
정태인 :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협동조합은 시장경제 안에 있다. 하지만 협동조합 모델을 가지고도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고 내부 구성원들이 행복하다? 그러면 이 모델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확산되고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적 신뢰와 연대 문화가 약하다. 따라서 당장 에밀리아 모델을 이식하기는 어렵다. 다만 작은 것부터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파동 국면에서 아이쿱 등 생활협동조합이 확장된 사례가 있다.
정원각 :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협동조합은 사업적으로 대안을 제시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을 때, 아이쿱 생협이 한우에 대해서 광우병 검사를 하는 등 발 빠르게 대처해 대안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참여한다.
김종철 : 여러 측면에서 당장 에밀리아 모델을 우리에게 적용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이 방향이 맞다면, 지금이라도 준비를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정태인 : 제도적 보완이 선결 과제다. 협동조합 일반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 현재는 없는 상태다. 또 이미 활동하고 있는 협동조합이 잘 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정부가 발주할 때 우선권을 주는 방법도 검토해 봐야 한다. 지자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간병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 대해서 협동조합에 우선권을 줄 수도 있다.
정원각 : 사회적 관심과 인력의 확충도 필요하다. 인력풀이 취약하고 기업의 형태가 주식회사가 거의 대부분이다. 협동조합을 이해하는 경영자도 없고 경제전문가도 없다.
정태인 : 어렵겠지만 농협을 개혁하는 것도 방법이다.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금융기관으로 만든다면 굉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또 중소기업중앙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에밀리아의 중소기업과 우리를 비교하면 천당과 지옥이다. 에밀리아의 중소기업은 부족한 게 있으면 기댈 곳이 많다. 기술적 지원은 중소기업네트워크협의회(CNA)에서, 법이나 제도를 바꾸기 위한 로비는 레가가 맡고 있다. 우리 중소기업중앙회도 CNA와 같은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김종철 : 우리나라 중소기업중앙회는 재계 단체 중 하나에 불과한 것 같다. 협동조합의 개념이 전혀 없다. 앞으로 좀더 연구해야할 부분이 있다면...
정태인 : 이번에 가서 직접 보고 더 많이 알게 되니까 오히려 질문이 더 늘어났다. <오마이뉴스>가 계속 관심을 가지고 후속 취재를 더 해야할 것 같다(웃음). 특히 레가가 이윤의 3%를 발전기금으로 거둬서 투자를 하는데 사실 북부에서 더 많은 기금이 생기지만 남부에 더 많이 투자했다. 30년 이상 그런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남부의 협동조합이 크게 늘어났다. 이탈리아 남부에서 협동조합의 성장도 좋은 연구 주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정원각 : 이탈리아 남부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남부는 마피아를 중심으로한 혈연이나 지연이 강하다. 우리도 오래된 도시들은 대부분 각 고등학교 동문, 또 문중 등 학연 혈연이 미치는 영향이 강력하다. 이탈리아 남부에서 어떻게 협동조합이 성장하고 지역이 변화했는지를 보면 우리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