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유형문화재 42호 '어은정'
이명주
약간의 반주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마치고 할머니와 한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눈을 뜨는데 발끝 한지창 가득 햇살이 눈부셨습니다. 심신이 가뿐해서 어은정 툇마루에 나와 서니 새벽 기운이 번진 고택의 풍경이 아름다웠습니다. 여기에 달고도 차가운 시골 공기가 가슴을 시원스레 틔워줬습니다.
노부부의 아침은 여유로우면서 바지런했습니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할아버지는 어은정 앞 자갈마당에 고추를 꺼내 말리고 할머니는 도시에 사는 손자가 맡겼다는 골든 리트리버의 안부를 확인한 뒤 부엌으로 향했습니다. 수만 번 반복했을 부부의 아침은 손발이 척척 맞는 장인의 작업을 연상케 했습니다.
짧지 않은 여정에 휴식이 절실했던 저는 온종일 집 안에 머물렀습니다. 늦은 오후 딱 한번 외출을 했는데, 밤 팔러나간 할머니를 마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사이 노부부의 일상을 고스란히 지켜봤는데, 평범한 일상 속에 오랜 습관처럼 묻어나는 두 어른의 정이 무척이나 각별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