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의 침전 영역인 강녕전과 교태전의 위치. 강녕전은 왕의 침실이고 교태전은 왕후의 침실이었다. 사진 하단에 광화문과 행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경복궁 홈페이지
3. 침실 준비물 완비 : 이부자리를 깔아놓은 뒤에는 그 머리맡에 물수건을 놓는다. 구한말에는 물수건 옆에 초인종도 함께 놓았다고 한다. 또 요강과 타구도 대령한다. 타구란 침이나 가래를 뱉는 그릇이다. 그리고 다섯 개의 촛대에 불을 밝혀 둔다.
한편, 왕의 침실에는 살림살이를 놓지 않는 게 원칙이다. 잠자는 데에 필요한 것 외에는 일절 비치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왕의 신변을 위협할 만한 일체의 도구를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4. 일부 궁녀들의 철수 : 침실이 정돈된 다음에 두 남녀가 입장하면, 숙직 상궁들을 제외한 나머지 궁녀들은 침실 근처에서 즉각 철수해야 한다. 숙직 궁녀들은 보통 60대나 70대였다고 한다. 그보다 젊은 궁녀들, 심지어는 50대 후반의 궁녀들도 침실 근처에는 얼씬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숙직 상궁들은 왕의 성관계에 개입했으므로, 이들의 나이가 많아야만 왕이 심리적으로 편안했을 것이다.
두 남녀의 입장이 완료된 다음에는, 연로한 상궁이 침실 이곳저곳을 최종적으로 점검한다. 그는 이부자리를 살핀 뒤에 다섯 개의 촛불을 하나씩 끈다. 그 상궁이 소등을 하고 나오면, 그제야 왕과 여인은 본격적인 잠자리를 갖게 된다.
5. 숙직 상궁들의 보좌 : 왕의 잠자리는, 엄밀히 말하면, 1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가 아니라, 1명의 남자와 최대 9명의 여자가 함께 하는 것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왜냐하면, 총 9개의 방이 우물 정(井)자 형태로 연결된 대형 침실 중에서 중앙의 방에는 왕과 여인이 들어가고 미닫이문으로 서로 붙은 8개의 방에는 숙직 궁녀가 한 명씩 들어가기 때문이다. 약간의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침실의 기본적인 구조였다.
TV 속에 나오는 왕의 침실은 그나마 넓은 편이다. 경복궁 강녕전의 침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왕과 여인이 함께 지내는 공간은 두 사람이 좀 편하게 누울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바로 옆방에 대기한 상궁들이 왕의 숨소리를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숙직 상궁들의 방을 연결하는 미닫이문은 항상 열어두었다는 점이다. 왕의 방과 숙직 상궁의 방을 연결하는 문만 닫아둘 뿐이었다. 이는 숙직 상궁들이 서로의 행동을 관찰 내지는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기여했을 것이다.
왕의 잠자리 목적은 오로지 '왕자생산'그럼, 숙직 상궁들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을까? 그들의 임무는 왕을 시중드는 한편 왕의 성관계를 '보좌'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성관계 도중에도 왕에게 이러저러한 조언을 했다고 한다. 왕이 어린 경우에는 이들의 역할이 한층 더 컸을 것이다. 왕이 너무 '심취'한 경우에는 "옥체를 생각하시어 이제 그만하십시오!"라며 왕을 제지할 정도였다고 한다.
숙직 상궁들을 두어 왕을 보좌하도록 한 것은 왕의 잠자리가 쾌락 그 이상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왕이 여인을 가까이하는 것은 성적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왕자의 생산을 위한 것이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이 지나치게 쾌락에 빠져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이들은 언제라도 왕을 제지할 권한과 책임이 있었다. 이들은 왕의 성관계가 왕자 생산이라는 목적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왕의 행동을 관리할 책임을 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