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정비사업 이후 낙동강 6곳의 부유물질 조사 결과 이전보다 최대 16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낙동강에서 벌어지고 있는 준설작업 모습.
윤성효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수하는 유역의 습지로 들어가는 길은 불편했다. 사람 키보다 높이 자란 수풀이 앞서 가는 사람들을 자꾸 가리고, 가시를 가득 곤두세운 이름 모를 나뭇가지들이 발목에 엉키기 시작할 때 나는 후회했다. '괜한 짓을…… 한강 옆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다 볼 수 있는 것을, 아니면 식물원에라도 가면 되는 것을 굳이 뭐 다를 게 있다고.'
여름의 한복판, 누군가 습지에 들어갈 때 낭패 보지 않을 복장이라고 알려 준 대로 구색을 갖춰 입은, 긴 바지와 목까지 가린 긴팔 옷 아래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열기와 땀이 후회와 함께 온몸에 흘러 넘쳤다. 발밑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할 수 없는 풀 위를 밟고 나아가는 조심스런 걸음걸이가 조금씩 빨라질 무렵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야생화들이 있었다. 짤막한 감탄사가 입에서 나도 모르게 툭하고 떨어졌다.
기생초, 들국화 그리고 굳이 이름을 몰라도 좋을 꽃들. 노랗거나 그렇지도 않은, 자주색이거나 꼭 그렇지도 않은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색을 가진 꽃들이었다. 야생화들의 낯선 아름다움은, 내가 걷고 있는 습지가 인간의 발자국이 아닌 고라니, 수달, 멧돼지의 발자국으로 길을 삼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들의 길 사이사이 관상용으로 잘 정리되고 개발되어 순치된 꽃이나 나무, 강물에게서는 느끼기 힘든 야성(野性)! 그것은 내 언어로는 감히 다 밝힐 수 없는, 다가설 수 없는 자연의 이면이었다. 그것은 인간을 위한 벤치를 만들고, 인간을 위한 가로등을 설치한 한강의, 청계천의 관상용 자연에게는 있지 않은 원시 자연의 은밀한 속내였다.
비 오듯이 쏟아지는 땀을 기꺼이 흘리며, 저 수풀 안 어디에서 짝을 짓고 있을 수달에게 방해라도 될까 조심스러워하며 살금살금 다가서야 비로소 엿볼 수 있는 속내였다. 속내를 간직한 자연 앞에서 비로소 나는 나를 낮출 수 있었다. 순치되지 않은 자연의 신비 앞에서 비로소 나의 앎이 알량해지고, 나의 세속적 욕망이 초라해졌다.
나는 간혹 한강이나, 청계천을 걸을 때 누군가 이곳을 잘 만들었다 놓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강을 한강처럼 바꾸어 놓는 식의 4대강 정비 사업이라면 끔찍한 생각이 든다. 한강은 한강 하나로 족하다. 청계천 식의 산책로는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
자연을 소비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은 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