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장 호텔 리더루프카의 매니저인 아네트(Annette)가 취재팀을 위해 퐁듀 요리를 내놓았다.
유성호
산장 호텔에서의 저녁식사. 메뉴는 퐁듀. 스위스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음식 로망 가운데 하나다. 송아지 고기 크림 스튜인 취리히 스타일의 '게쉬닛첼테스(Geschnetzeltes)'와 스위스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감자 요리인 '뢰스티(Rösti)', 레만 호수에서 잡은 담수어(농어의 한 종류) 요리인 '피렛 드 페르슈(Filet de Perche)'는 이전 여행지에서 먹어봤다. 그러나 퐁듀는 처음이다. 우리 일행만 묵고 있는 분위기 있는 산장 호텔에서 스위스 와인을 곁들인 퐁듀 요리를 먹는다니, 생각만으로도 즐거웠다.
퐁듀(fondue)는 스위스 산악지방에서 즐겨먹던 겨울철 요리다. 우리나라 뚝배기처럼 두께가 두꺼운 도자기 냄비에 그뤼에르 치즈나 에멘탈 치즈 등을 넣고 화이트 와인과 버찌로 만든 증류주 키르슈로 녹인다. 깍두기만한 크기로 자른 식빵을 가늘고 긴 포크에 꽂아 도자기 냄비 안의 녹은 치즈를 휘휘 저어 먹는 음식이다. 처음에는 남은 치즈를 재활용해 먹는 서민적인 음식으로 출발했는데 외국 사람들에게는 고급 음식으로 대접받는다. 먹어보진 않았지만 튀김 냄비에 기름을 끓인 뒤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익혀 먹는 미트(오일) 퐁듀도 있다고 한다.
리더푸르카 호텔 매니저인 아네트(Annette)가 우리 일행을 위해 일반 치즈와 토마토 소스를 가미한 치즈, 두 종류의 퐁듀 요리를 내놓았다. 약한 불로 도자기 냄비 안의 치즈가 굳지 않도록 했지만, 그래도 먹을 때마다 8자로 저어야 한단다. 스위스에서 먹어본 퐁듀 요리는 생각보다 짭조름했다. 퐁듀뿐만 아니라 게쉬닛첼테스도 조금 짠 편이었다. 일본 음식이 전반적으로 단맛이라면, 스위스 음식은 짠맛이었다. 내 입맛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여행의 즐거움이다.
스위스에서 가장 크고 긴 알레치 빙하를 만나다이튿날, 휴대폰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오전 5시. 날이 밝았다. 호텔 1층에 내려가보니 아네트가 취재팀의 아침과 점심 샌드위치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우리 일행이 아침을 먹고 있는데, 아트 퓌러가 왔다. 그는 1959년부터 1972년까지 미국 할리우드에서 묘기스키로 여러 영화에 출연해 인기와 돈을 모았고, 다시 스위스로 돌아와 활동하다가 지금은 리더알프 지역에서 여러 개의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스위스에서 유명한 사람이다. 아트 퓌러는 순박하고 고집 센, 스위스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한 모범적인 중산층처럼 느껴졌다.
오전 6시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챙겨 알레치 숲길 하이킹에 나섰다. 알레치 빙하(Aletsch Glacier) 트레킹은 크레바스 때문에 어렵고 빙하를 볼 수 있는 지점까지 가는 일정이다. 알레치 빙하는 발레(Valais)주 북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스위스에서 가장 크고 긴 빙하다. 전체 길이는 23km 정도이며 약 265억t의 얼음으로 이뤄져 있다. 빙하 두께가 700~800m에 이르는 곳도 있다. 마치 강물이 흐르듯 융프라우에서 리더알프와 배트머알프(Bettmeralp)로 이어진다. 알레치 빙하는 스위스에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됐다. 193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알레치 숲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삼림 보호 구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