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 다그마(Dagmar)가 스위스 라보지구 포도밭 언덕에서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지도판을 이용해 편안하게 트래킹을 즐길 수 있다"며 취재팀에게 설명하고 있다.
유성호
취재 이튿날인 6월 7일, 스위스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지 라보(Lavaux) 지구 포도밭을 걷는 날이다. 아침 일찍 레만 호숫가에 있는 찰리 채플린 동상 주변을 산책하고 서둘러 호텔로 돌아왔다. 스위스 사람들은 약속 시간에 철저하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하이킹 첫 날부터 지각해서 이미지를 구길 수는 없지 않은가. 라보 지구를 안내해 줄 가이드 다그마(Dagmar)는 약속 시간 5분 전에 이미 호텔 프론트에 도착해 있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녀는 20년 전에 스위스로 왔고, 지금은 '올림픽의 도시' 로잔에 살고 있다.
로잔~브베~몽트뢰에 걸쳐져 있는 라보 지구는 레만(Leman) 호수 북쪽에 위치한 햇볕이 잘 드는 구릉지대다. 26개 주(canton) 가운데 하나인 보(Vaud)주에 속해 있다. 끝없이 이어진 계단식 포도밭과 그 앞에 펼쳐진 드넓은 레만 호수, 건너편에 보이는 프렌치 알프스 등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2007년 6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와인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하이커들에게도 인기있는 하이킹 코스로 이름나 있다.
전체 면적은 830만m²(251만 평). 11세기 수도원에서 포도밭을 일구면서 이곳에서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석회질 토양인데다 기온이 온화해 화이트 와인의 주재료가 되는 샤슬라 품종을 재배하기에 적합하다. 풍부한 과일향과 섬세한 맛이 특징인 이곳 와인은 스위스에서도 손꼽힌다. 라보 지구는 카라멩(Calamin), 샤도네(Chardonne), 데잘레이(Dézaley), 에뻬쓰(Epesses), 뤼트리(Lutry), 생 사포랭(St-Saphorin), 브베-몽트뢰(Vevey-Montreux), 빌레트(Villette) 등 모두 8개의 포도농장 공동체인 아펠라시옹(Appellations)으로 구성돼 있다.
라보 지구는
스위스정부관광청이 추천한 13개 걷기여행 코스 가운데 하나. '포도밭 속으로 떠나는 하이킹'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낭만이 물씬 풍긴다. 스위스 올레 취재팀의 하이킹 코스는 뤼트리~에뻬쓰(Epesses)~셰브르(Chexbres). 하이킹과 관광 열차인 '라보 익스프레스' 체험을 동시에 하는 일정이다. 관광청에서 추천하는 코스는 생 사포랭~뤼트리. 거리는 11km, 소요 시간은 3시간15분. 취재팀은 이 코스 가운데 5~6km를 걷고, 3~4km를 관광 열차로 둘러보는 셈이다.
라보지구에는 왜 세 개의 태양이 있을까브베에서 기차를 타니 11분 만에 뤼트리에 도착했다. '스위스 타임'답게 출발도, 도착도 열차 시각표에 표시된 그대로다. 이제부터 '포도밭 하이킹' 고고싱~. 경사진 언덕배기를 조금 올라가니 코너에 차량 제한속도 30km라는 표지 아래 'Merci!'라는 환영 인사말이 외부인을 반긴다. 수확한 포도를 이층 창고에 저장하기 위해 지붕에 매달아 놓은 도르레도 눈에 띄고, 화단으로 변신한 포도 압축기도 살갑게 느껴진다. 주요 길목마다 설치돼 있는, 불어·독어·영어 등 3개 국어로 표기된 안내판에는 해당 지역에 대한 특징적인 소개 글이 친근한 일러스트와 함께 방문객들의 도우미 역할을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