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휴대전화 최근 통화목록
김학용
그럼, 여기서 나의 휴대전화 저장목록을 공개한다.
-1번 '여두목전화왔다'결혼 13년차 아내는 예쁘고(?) 상냥한 성격으로, 학창시절 때부터 인기도 많고 따르는 친구들도 많은 편이다. 그런 아내의 친구들은 나에게 "상냥하고 예쁜 마누라 둔걸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내뱉는다.
집에만 돌아오면 조폭으로 변신하는 그녀의 실체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의 속도 모르고 거침없이 쏘아대는 그들이 더 얄밉다. 하지만, '조폭'보다 더 무서울지라도, 늦으면 밥을 안 줄지라도, 몸무게가 50kg가 넘을지라도 뭐니 뭐니 해도 내 아내가 최고다.
-2번 '두목큰아들'초등학교 5학년인 큰 아들은 내 휴대전화에 저장된 아내의 애칭을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저장목록 1번 애칭을 '♥내사랑♥'으로 슬며시 바꿔놓지만, 다시 '여두목전화왔다'로 바꾸는 내 의지 앞에서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언제나 왕자처럼 군림하려는 짜증대장 큰아들은 역시 엄마를 닮은 것이 분명하다. 저장 애칭은 물어볼 필요가 없다. 당연히 '두목큰아들'이다. 여두목과 큰아들이 합세하여 공격해도, 나에겐 믿음의 아군인 '이쁜아들'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다.
-3번 '이쁜아들'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사실 휴대전화가 필요 없다. 그래도 위급할 때 사용하라고 사준 휴대전화는 역시 십중팔구는 받지 않는다. 휴대전화에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온라인 축구게임에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쁜아들'은 정확히 오후 7시가 되면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아빠! 7시인데 왜 안 와요?"로 시작되는 전화는, 혹시 모임이나 회사일로 늦게 되는 날이라면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한다. 30분 간격으로 전화에 불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 이쁜아들의 횡포를 아내는 별로 막지 않는다. 은근히 대리민족을 하며 즐기기 때문이다. 아빠가 귀가할 때까지 절대 잠자리에 들지 않는 이쁜아들이 있어 그래도 귀가가 즐겁다.
-0번 '사랑사랑내사랑'아내를 '여두목'이라 칭하고 아들을 '두목큰아들'이라고 칭하는 간 큰 아빠가 귀가하는 집의 단축번호는 0번이고 '사랑사랑내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