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찍은 고흥 새집. 아직 채 다 갈지 못한 밭 주변에 강아지풀이 수북하게 자라 있다.
송성영
지혜의 강은 오고 갈 수 있으나 욕망의 강은 한 번 건너고 나면 다시 되돌아가기 힘든 것 같습니다. 아내의 '내친 김에' 욕망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효 아빠, 내친 김에 새것으로 하자.""그냥 새것으로 하시죠. 변기도 그렇고 세면대도 그렇고 부속품이 빠져 있어 설치하기 어렵겠는데요."'내친 김에' 병에 걸린 아내, 새것에 눈 뜨다변기와 세면대를 설치해 주겠다고 다시 집 짓는 현장으로 돌아 온 윤구씨가 아내를 거들었습니다.
"거시기, 그거 없는 부속품 구해서 설치하믄 안 되나?""아이구, 형님 그걸 어디서 구해요. 그냥 형수님 하자는 대로 하세요.""인효 아빠는 가만히 있어. 내부 설비는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부속품이 한두 개쯤 빠져 있는 멀쩡한 화장실 변기며 세면대를 집 짓는 현장 옆에 모셔다 놓고 아내는 윤구씨와 한통속이 되어 내친 김에 새 것으로 설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공주에서 시골생활할 때 새것을 쓰지 않고 거의 모든 생활용품을 재활용해 사용했던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새 집을 지었으니 거기에 구색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투덜거리거나 말거나 아내와 윤구씨는 건재상에 가서 새 변기며 세면대를 비롯한 유리며 비누 받침대, 수건걸이 등을 구입해 돌아왔습니다. 윤구씨가 화장실 설비를 할 무렵 장판과 도배, 싱크대 등을 설치할 업자들이 찾아왔습니다.
도배와 장판지를 가장 저렴한 것으로 하자고 했지만 아내는 중간 가격대로 골랐습니다. 싱크대 역시 본래 시골집에 쓰던 것을 다시 설치해 놓고 쓰려고 했는데 아내는 새집에 비해 싱크대가 너무 작고 낡았다며 새 것으로 장만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충 적당한 걸루 혀, 때 안 끼고 그런 거 있잖어. 애들 방은 밝은 걸루 하구.""가만 있어봐, 그래도 민박집을 할 건데 깔끔한 것으로 해야지.""좋은 놈 찾다가는 끝이 없다니께.""내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 화장실이나 싱크대나 가스레인지 이런 건 기본이잖아.""그냥 쓰던거 쓰지, 인건비 주고 나서 이제 돈도 별로 없잖어. 그런 거 설치할 돈이나 있어?""어디서 한 오백만 원 빌릴 수 있어.""빚을 져?""걱정 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까짓 거 이럴 때 써야지 언제 쓰겠어."돈 쓰는 데 겁을 내가며 한 푼 두 푼 모아 왔던 아내는 점점 간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화장실이 따로 설치된 손님용 큰 방에도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작은 냉장고까지 설치해 원룸 형식으로 말끔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그동안의 힘들었던 시골살이를 집 꾸미는 것으로 그 보상을 받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10여 년 전 시골 빈집을 구했을 때 용감무쌍하게 허물어진 빈집에 들어가 헌 장판지를 끄집어내 냇물에 씻고 또 씻어가며 재활용했던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내부 공간 설비에 점점 눈이 높아져 가고 있었고 그런 와중에도 업자들과 흥정을 하면서 물품과 설치 비용을 깎고 또 깎아댔습니다.
"어휴, 도배집 사장님한티 괜히 미안혀네, 여기까지 오라고 해놓고 자꾸만 깎아대구. 인효 엄마 대충 혀, 그러다가 저 분들 인건비도 안 나오겠다.""가만히 좀 있으라니까.""아이구 머리 아퍼. 이제 나도 모르겠다."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저만치서 쭈그려 앉아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다가 아내에게 시달림을 당하고 있는 업자들에게 미안해 실실 아내 눈치를 살펴가며 한 마디씩 툭툭 던져 놓고 은근슬쩍 집 밖으로 빠져 나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아내가 원하는 대로 집 내부는 '삐까번쩍' 호화판으로 꾸며졌습니다. 아내 말대로 그래봤자 보통 아파트 내부 수준에 불과하다지만 이전에 살던 시골집을 생각하면 초호화판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집 내부로 들어설 때마다 물질의 거센 물살을 휩쓸려가고 있는 것처럼 어지럼증이 났습니다.
내부 설비가 마무리될 무렵 뒤늦게 장작 보일러가 들어왔습니다. 보일러 대리점 사람들이 한창 장작 보일러를 설치하고 있는데 아내가 그럽니다.
"아참! 아랫집 할아버지가 땔나무 갖다 때랬어.""할아버지는 어떻게 하시구?""이제 아궁이 불 지피시는 것도 힘드시나봐.""그렇게 많이 안 좋으셔? 할아버지 뵌 지도 한 달이 넘었구만......"이 호사스러운 집에 누굴 초대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