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명전왕비의 침소. 경복궁 교태전과 함께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이하다
이정근
그날 밤, 소의 조씨의 부름을 받은 김자점이 후궁전을 찾았다. 실록이 우거진 통명전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어서 오시오. 대감!"소의 조씨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흘렀다.
"마마! 문후 여쭈옵니다."궁중에서 마마라 호칭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전의 상감마마와 내전의 중전마마, 대왕대비마마, 동궁전의 세자마마, 세자빈 마마 등이다. 그런데 빈(嬪)도 아닌 후궁전 소의에게 마마라니 역시 김자점은 아부의 달인이다.
"하하하, 이 밤중에 문후라니 어울리는구려."가소롭지만 귀엽다는 표정이다. 사실 소의 조씨는 임금을 맞을 채비로 몸단장하고 있었다. 허나, 임금이 오지 못한다는 전갈을 받았다. 몸이 불편하다는 것은 구실일 뿐, 귀인 장씨에게 가려는 연막이라는 것을 풀어놓은 아이들을 통하여 알고 있었지만 투기는 화(禍)를 부른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심정을 위로해준다는 것인지 불러주어 고맙다는 것인지 헛갈린다.
"망극하옵니다."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오늘밤 전하를 뫼실 예정이었지만 성상께서 쉬고 싶다 하시어 대감과 차라도 한잔 하고 싶어서 불렀소이다.""황공하옵니다.""전하께서 병판과 김대감에게 내구마 1필 씩을 하사했다는데 경하 하오.""모두가 마마의 은혜라 생각합니다.""은혜라니요. 기왕 주는 거 좋은 걸로 주라고 했을 뿐입니다.""황공무지로소이다."김자점이 소의 조씨 앞에 머리를 박고 들지 못했다.
"뭣들 하느냐? 냉큼 차를 내오지 않고."소의 조씨가 합문을 향하여 소리쳤다. 기다렸다는 듯이 내전 상궁이 차를 대령했다. 중전이 경희궁으로 쫓겨 간 이후, 중전을 모시던 내전 상궁이 아예 후궁전에 붙었다.
"어서 드시지요.""예"김자점이 찻잔을 들었다. 땅거미가 짙은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임금이 총애하는 후궁과 차를 마시는 것이 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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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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