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클럽의 광고 어느 교복 브랜드의 광고 사진.
아이비클럽
엉덩이로 공부하다가 파열이라도 될까봐 건강검진도 받아야 하고, 가파른 길 위에 있는 학교 탓에 등교가 두려워지는 여름이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단연 하복이다. 학창시절 마지막 하복인데다 어디서 사야 할까 나는 내심 고민하고 있다.
요즘 학교에 가면 온통 교복 얘기들로 어수선하다. '이곳이 좋더라.', '치마는 이곳이 예쁜데 셔츠는 저곳의 것이 더 날씬해 보이더라.'는 등의 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여기서 '이곳' 혹은 '저곳'이란 당연히 메이커 교복 가게를 의미한다.
"허리 잘록""다리가 길어 보이는 교복""2010년 여름, 우리는 아이돌이 된다.""라인 있는 교복""우리 교복은 좀 빠르다."등을 구호로 내건 브랜드 교복 말이다.
우리 반, 하복을 입은 첫 타자는 A양이었다. 그 애는 딱 붙는 교복과 그에 어울리는 노란 스웨터를 입어 친구들의 관심을 끌었다. 날씬한 그 애가 몸매를 살려주는 교복을 입으니 퍽 예뻤다. 노란색 스웨터를 같이 입어 청순한 여고생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친구들 역시 그녀의 옷맵시에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교복과 함께 갖가지 예쁜 아이템은 스타일의 조화를 이룬다. 이는 우리의 예뻐지고 싶은 욕구를 잘 드러낸다. 우리가 유행을 따르고 외모와 옷차림에 민감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예뻐지고 싶은 본능이다. 내적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사춘기인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멋을 외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애의 치마는 허벅지를 드러내고, 셔츠는 허리선을 타고 내려갔다. 치마 길이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거울을 보며 터져 오는 재킷의 단추를 잠가 본다. 숨겨 놨던 뱃살이 나올 염려는 잠시 접어두고, 배가 쏙 들어가도록 힘을 바짝 주어 본다. 조심스레 단추를 안쪽 구멍으로 넣어 본다. 성공이다. 만족스럽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흡사 소녀시대의 몸매를 능가할 것이라는 착각 아닌 착각에 빠져 본다. 잘록한 허리, 길고 늘씬한 다리. 획일화된 미의 기준이 우리를 옭아맨다. '나의 교복'이 아닌 '교복의 나'가 되어버렸다. 교복이 우리를 지배한다.
'교복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복'이란 광고 세례와 기업이 추구하는 이윤 동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은 그들 자신이 만들어낸 유행을 우리에게 은근히 강요한다. 그럼 우리는 거기에 못 이긴 척 따라간다. 대중매체에 드러난 이상적인 몸매의 연예인들, 그들이 보여주는 선정성. '나'도 그 브랜드 교복을 입으면 여느 연예인들과 같은 몸매를 가질 수 있다는 환상의 볼모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