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효 녀석은 할머니들이 귀여운 고양이들 같다고 합니다. 오른쪽 끝이 사글세방 할머니.
송성영
"뭘라구 찍어요이.""그냥요 보기 좋아서유.""아따 뭐시가 보기 좋아, 다 늙은 것들인디.""마루에 앉아 계시는 모습들이 하두 이뻐서요.""아따 참말로 뭐시가 이쁘다구", "그려, 찍어, 찍어." 다들 한마디씩 하면서 바른 자세로 고쳐 앉습니다. 마루 가득한 햇살만큼이나 남도의 환한 웃음 빛깔이 사진기에 가득 잡혀 옵니다. 주름 잡힌 시골 할머니들의 웃음은 짙은 화장발로 늙지 않으려 애쓰지 않는 건강한 웃음입니다. 순수한 간난 아기의 미소와 닮았습니다.
사진을 찍고 돌아 나오는데 인효 녀석이 방그레 웃으며 할머니들이 따사로운 볕에 앉아 있는 귀여운 고양이들 같다고 합니다.
"그려 그러기도 하네, 아빠는 할머니들이 간난 아기들 같고 또 뭐시냐, 고목 나무에 핀 이쁜 꽃 같던디."집은 다 지어가는데, 가슴이 왜 답답할까요돼지고기를 사 들고 집 짓는 현장에 돌아와 막힌 가슴팍을 어루만져가며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고 김치찌개를 끓였습니다. 사글셋방 할머니가 주신 파래 반찬에 김과 김치를 꺼내놓고 보니 그런대로 상차림이 근사했습니다.
"밥이 맛있네요. 밥만 먹어도 되겠네요."다들 맛있게 김치찌개 한 냄비를 거의 다 비웠습니다. 밥도 두 공기씩이나 먹었습니다.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웠습니다. 점심을 다 먹을 무렵 바닥 미장 일을 준비하기 위해 모래와 시멘트를 가득 실은 트럭이 들어왔는데 윤구씨 말로는 모래가 적게 실려왔다고 합니다.
레미콘에 방통차(콘크리트를 부어 바닥 미장일을 하는 차)를 부르게 되면 140만 원 정도의 경비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것도 고흥에서 구할 수 없어 순천이나 광주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방통차를 이용하면 이른 시간 내에 매끈하게 바닥 미장을 할 수 있는데 사람의 손으로 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미장일이 매끄럽지 않게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 저기 수소문하여 미장일하는 사람들을 부르기로 했습니다. 미장 기술자 2명에 뒷일을 봐주는 두 사람, 모두 4명이 일하는데, 100만 원 정도면 할 수 있다고 하니 방통차를 부르는 것보다 40만 원을 절감할 수 있고 또 지역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줄 수 있어 일석이조였습니다. 사람 손을 빌리게 되면 일은 좀 더디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급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윤구씨는 늦은 오후까지 손님방 문짝을 만들어 큰 유리문을 끼워넣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숨 막히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차 안에 누워 있다가 밖으로 나와 서성거리기를 반복했습니다.
자동차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에서는 서울에 눈이 많이 오고 있다고 합니다. 기상 관측이래 최대랍니다. 아침나절 잠시 눈이 내리는가 싶더니 이내 녹아 버린 고흥은 찬바람이 불어댈 뿐이었습니다. 서울시가 염화나트륨을 뿌려 시민들을 편하게 하느니 어쩌니 호들갑을 떨고 있는 모양입니다. 중국이나 스위스 등도 폭설로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 지구촌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며 난리를 치고 있지만 고흥은 영하 3℃. 멀쩡하기만 했습니다.
가슴팍이 답답해서 함께 웃을 수 없었습니다날씨와는 상관없이 하루해가 지고 또다시 먹어야 할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도화면에 있는 창민이네 식당을 찾았습니다. 온돌방에 들어서자 막혀 오던 가슴팍이 조금 잠잠해졌습니다. 해물이 대부분인 상차림을 보면서 생선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인효 녀석이 양미간을 찡그립니다.
인효 녀석이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호떡이 먹고 싶다며 분식집에 들어갔다가 닭 꼬치 한 개를 들고 나옵니다.
"호떡은?""호떡이 없어서 닭 꼬치 샀어. 아빠 내가 웃기는 얘기 해줄게. 분식집에 서너 사람이 난로 불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거든, 근디 어떤 사람이 '말세여 말세' 그라더라구.""왜 말세라는 겨?""올겨울처럼 추운 적이 없었다는 겨, 겨우 영하 3℃밖에 안 됐는데." "고흥이 그만큼 따뜻하다는 얘기지." "여기는 인심이 참 좋은 거 같어. 어떤 아저씨가 어묵을 먹고 나서 5백 원이 부족했는데 분식집 아줌마가 나중에 갚으라며 그냥 가래."돌아오는 차 안에서 닭 꼬치를 다 먹은 녀석이 아쉬운 듯 입을 쩝쩝거립니다. 식당에서 마땅히 먹을거리가 없어 젓가락만 깔짝거리던 녀석이었기에 뭔가를 더 먹고 싶은 모양입니다.
슈퍼마켓에서 빵이라도 사 먹이려 했는데 목수들의 자동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목수들이 떠난 줄 알고 서둘러 사글셋방에 도착해 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윤구씨가 방바닥에 큼직한 과자 봉다리를 턱 하니 내려놓습니다.
"사는 게 뭐 있어, 다 먹자고 하는 것인데 공부도 먹자고 하는 거지, 까까 먹자 인효야."윤구씨는 늘 그래 왔듯이 텔레비전을 켜놓고 말 많은 할머니들처럼 드라마 속의 인물들과 한통속이 되어 이것저것 참견해 가며 신나게 웃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가슴팍이 답답해 함께 웃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아픈 가슴 부여잡고 한의원으로 향했습니다따듯한 방바닥에 숨이 턱턱 막혀 오는 가슴팍을 녹이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작은아들 인상이 녀석의 과잉 치아를 뽑기 위해 대전 대화 공단에서 살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인술을 베풀고 있는 푸른 치과 신명식 원장을 만나고 왔다고 합니다.
신 원장은 인상이가 과잉치아를 뽑고 나면 치료를 받고 보철을 해야 하는데 그 돈이 만만치 않다며 우리보다 더 걱정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치료를 해주면 될 것인데 고흥으로 이사를 가 타지에서 보철을 하여 치료를 받게 될 경우 500만 원 이상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큰일이네 공사비가 바닥을 치고 있는디, 그래서 어떻게 했어?""일단 과잉치아부터 뽑고 나서 상의 하자셔. 이사 가서도 돈 들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시겠데."(훗날 우리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신명식 원장이 돈 한 푼 받지 않고 치료며 그 가격이 엄청나다는 보철까지 해 주었습니다.)
다음날 내부 바닥 미장일을 시작했습니다. 헌데 미장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이 모래가 부족하다며 한 차 더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