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 스님.
최경준
이 '끔찍한' 광경을 지켜본 행자는 총알같이 주지에게 달려가 고했다. 그 귀하신 부처님을 도끼로 쪼개 땔감으로 쓰고 있으니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주지가 소리쳤다. "야, 이 땡중아! 부처님을 땔감으로 쓰는 놈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냐?"
그러자 선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부처님을 땔감으로 쓴 게 아니고 사리(舍利)를 찾으려고 화장(火葬)한 겁니다."
더 화가 난 주지는 단하 선사의 목을 움켜잡고 소리쳤다. "이 미친놈아! 나무에서 어떻게 사리가 나온단 말이냐?"
그러자 선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부처가 아니네, 뭘!"
명진 스님은 이 우화를 들려주면서 대중에게 이렇게 묻는다.
"목불(木佛)은 불을 못 이기고, 니불(泥佛)은 물을 못 이기고, 금불(金佛)은 용광로를 못 이기니 어느 것이 진짜 부처냐?"
'표'와 '돈'은 정치와 불교의 '약한 고리'한국 불교는 전통 문화재의 보고(寶庫)다. 국보와 보물 같은 국가 지정 문화재 통계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국보(307종)의 56.4%, 보물(1469종)의 65.1%가 불교 문화재다. 쉽게 말해 한국의 국보와 보물 열 개 중에 예닐곱 개는 불교 문화재라는 얘기다.
전통 문화재의 유지 관리에는 적지 않은 돈이 든다. 불교 문화재의 태반이 화재와 풍화에 취약한 목재 문화재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래서 불교는 문화재를 유지 관리하는 데 적지 않은 예산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그것이 정치에 대한 불교의 '약한 고리'다.
종교에 대한 정치의 약한 고리는 '표'다. 신도들은 정치인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지 않지만, 교주의 말은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기적'이라며 믿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종교 지도자의 말씀은 유권자인 신도들에게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 선거 때가 되면 정치인들이 대형교회와 큰절의 행사를 찾는 이유다.
바로 이 대목에서 자연스레 정치와 종교 사이에 '돈'(예산 지원)과 '표'가 거래되는 '공생' 관계가 성립한다. 지난해 11월 13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 그리고 신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3인의 서울 프라자호텔 조찬 회동이 마련된 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과 종교 간 공생의 한 양식이었다.
그 자리를 주선한 사람은 전임 지관 총무원장의 종책특보였던 김영국(현 총무원 불교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씨다. 김 위원은 23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그 자리를 주선한 의도와 역할을 이렇게 밝혔다.
11월 13일 '3인 조찬회동'에서 무슨 말이 오갔나"종책특보는 불교계와 행정부, 정당 간 정책현안을 조정, 조율하고 협의하는 일을 한다. 그날 자리도 그런 자리였다. 불교는 대한민국 문화재의 60%를 갖고 있다. 불교가 의도하지 않게 국가 법령으로 지원도 받지만, 제한도 받는다. 우리 불교가 정부 문화재 정책만큼은 대등한 위치에서 조정해야 한다고 해서 마련한 자리다."바로 이 대목에서 그가 주선하고 배석한 그날 그 자리 3인 조찬회동의 '그림'이 훤히 그려진다.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한 김 위원은 재학 중에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 중앙회장을 지냈다. 그 뒤로 동국대 출신인 서석재 의원 보좌관을 거쳐 손학규 의원 보좌관, 한나라당 부대변인, 국회 문방위 소속인 고흥길 의원 보좌관을 지냈다. 굳이 정치적 성향을 따지자면 '친한나라당' 인사다.
그러니 '총무원장 종책특보' 직함을 가진 김씨가 조계종 총무원과 정치권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담당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가 주선한 불교계와 정치권의 '정책 현안'은, 양측의 해명에서도 일치하듯, 관광객들이 절에서 숙박하며 사찰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템플 스테이'(Temple stay) 사업이었다.
'템플 스테이'는 정부와 불교의 '공생 사업'이다. 한국관광공사는 2008년부터 조계종 불교문화사업단과 함께 템플 스테이를 한국의 대표 관광문화상품으로 육성하고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템플 스테이를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선정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템플 스테이 사업이 문화국가 이미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국민들의 건전한 여가문화 조성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로서는 관광수입을 늘릴 뿐만 아니라 국민의 여가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불교계는 사찰문화 체험을 통해 불교에 대한 관심을 증대할 수 있으니 템플 스테이는 그야말로 '1석3조' 사업이다. 그러나 템플 스테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수행 도량인 전통 사찰에 숙박 및 주차장 같은 편의시설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이 사업의 콘텐츠에 해당하는 문화재 보존관리에 대한 정부의 예산 및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