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관소현세자가 생활했던 곳. 현재는 심양아동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정근
세자의 새로운 거처를 본국에서는 심양관이라 호칭했으나 청나라 아문에서는 고려관이라 불렀다. 국왕이 항복했으니 조선반도에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다는 뜻이다.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현지에 주재하는 관원들은 세자관이라 불렀다. 역관 정명수가 세자관을 찾아 왔다.
"세자가 이곳에 들어온 지가 언제인데 아직 생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이해할 수 없소. 제고산과 제왕들도 다 자기의 힘으로 먹고 사는데 이곳만 어찌 식량을 계속해서 대줄 수 있겠소? 경작할 땅을 줄 터이니 내년부터 농사를 지어 먹도록 하시오."
고압적인 명령조다. 명나라와 전투를 치르며 군량미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나라가 세자관에 공급하던 식량을 끊겠다는 것이다. 대륙정복의 첫 희생양이 된 몽고왕은 청나라에 항복한 후 30여명의 시종을 거느리고 식량을 자급자족하며 조용히 살고 있었다.
"우리에게 농사를 지어 먹어라 하니 황망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소. 대국이 소국에서 속공해온 볼모를 먹이지 못하고 스스로 경작하여 먹게 한다면 이웃나라에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황제께서 이 일을 아신다면 후세의 부끄러움을 생각해서라도 거두어들일 것이오."세자가 '먹이지도 못할 인질은 왜 잡아 왔느냐?'며 완곡하게 항의했다. 세자관에는 한성을 떠나올 때 공식 수행원 193명을 비롯하여 중도에서 자원한 무과 급제자 박사명과 최득남, 만포 출신 사과(司果) 김충선, 서흥 아전 김대업 등 2백여 명과 허드렛일을 하는 노비 100여명, 도합 300여명에 이르는 대식구였다.
잡아왔으나 먹이는 일이 걱정이었다청나라는 세자를 호종한 관원들이 세자가 심양에 도착하면 소수 인원만 남고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예상을 깨고 300여명에 가까운 인원이 주저앉아 있으니 대명 전쟁을 치르는 청나라로서는 부담스러웠다.
"황제의 명으로 경작할 땅을 이미 세 군데 정해 두었소. 준비에 차질 없도록 하시오." 사뭇 위압적인 일방통고를 마친 정명수가 돌아갔다.
"아니, 저놈이 조선 놈인 것 같은데 세자저하께 저렇게 방자할 수 있단 말입니까?"정뇌경이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강화조약에 의거 세자가 볼모의 몸으로 한성을 출발할 때, 모든 신하들이 심양으로 떠나기를 주저했지만 자진해서 따라나선 사람은 세자빈의 오라비 강문명과 필선 정뇌경 단 두 사람뿐이었다.
"평안도 은산에서 천출(賤出)로 태어나 관아에서 하인 노릇을 하다 강홍립장군이 명나라의 요청으로 대청전쟁에 출정하자 따라나섰다가 포로가 되어 역관이 된 자입니다."평안도의 흐름을 한 눈에 꿰고 있는 신득연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축하성 땐 전하를 능멸했던 놈이고 영의정에게 발길질을 했던 놈입니다.""이런 찢어죽일 놈이 있나."분기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천하의 매국노입니다."빈객 박노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그런 놈 발치에 머리를 조아리는 조정대신들이 있다는 것이 한심한 일입니다."강효원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영의정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인데 저런 놈한테 아첨을 떨었다니 이 나라의 장래가 걱정입니다.정명수 성토로 시작했으나 결국은 조국의 현실을 한탄하는 자탄으로 끝났다.
삼전도에서 조선 임금의 항복을 받아 낸 청나라는 군사를 철수할 때 수많은 포로를 끌고 갔다. 그 포로 중에 영의정 김류의 첩이 낳은 딸이 끼어 있었다. 자신의 서녀를 빼내려는 김류가 용골대에게 부탁했으나 거절당하자 정명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이제 판사(判事)와 우리는 한 집안이니 공(公)이 청하는 바를 내가 어찌 따르지 않겠습니까. 내 딸이 속바치고 돌아오도록 힘써주시오.'라며 애걸했으나 돌아온 것은 발길질이었다.
소현은 재신들을 소집하여 대책을 협의했다. 거절하자는 중론이 우세했다. 농사 자체도 어려운 일이지만 농사를 짓게 되면 고국에 돌아갈 날이 점점 멀어지고 어쩌면 뼈를 심양에 묻어야 한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소현은 세자 이사 이경석으로 하여금 호부(戶部)를 방문하여 세자관의 입장을 전달하라 명했다.
농사는 고려관에서 알아서 하시오"대국의 은덕을 후하게 입어 폐를 끼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우리나라의 인적자원은 전후에 걸쳐 군병을 조발하고 군량을 운송하는데 이미 바닥이 났으니 농군부역을 동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또한, 기후가 다르고 농사법도 달라 농사를 지어 그 쌀을 먹게 될지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한인(漢人)은 농사일에 익숙하고 그들을 사는 것은 조선인과 달라 열 냥이면 살 수 있는데 어찌 그들을 사서 농사를 지을 생각은 하지 않는 거요?""관중에 자금이 말라 노예를 살 돈이 없습니다. 그들을 사서 농사를 짓는다 해도 그들이 힘써 농사를 짓는다고 기대할 수 없으며 흉년을 만나면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흉년이란 하늘에서 알아서 하는 일, 별것을 걱정하시오. 일 없소. 본국에서 농군을 데려다 농사를 짓든, 한인을 사서 농사를 짓든, 그것은 고려관에서 알아서 하시오.""본국에서 농군을 뽑아오는 일은 결단코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