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송.금강송이라고도 불리며 조선 왕실의 상징목이었다.
이정근
이사한 첫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한 소현세자는 뜰로 나왔다. 조선에서 옮겨 심은 적송은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지만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있었다. 하늘에는 별빛이 쏟아지고 비슬나무 가지에 초이레 상현달이 걸려있었다.
"보이지 않은 반쪽을 고국에 계신 아바마마께서는 보실 수 있을까?" 상현달은 반달이다. 보이지 않는 반쪽마저도 보고 싶었다. 여기에서 보이지 않는 반쪽이 고국에서는 보일 것만 같았다. 청나라의 심장부 심양에 와 있지만 하늘에 떠있는 반달처럼 청나라의 속내를 알 수 없어 안타까웠다.
소현세자는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를 행하던 부왕을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오고가는 신하들을 통하여 부왕의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중전도 없는 부왕의 안위가 항상 걱정이었다. 그러나 한성에 있는 인조는 소현의 염려와 달리 숙의 조씨에게 푹 빠져 있었다.
새집을 지어주는 것이 오히려 두렵습니다"저하, 주무시지 않고 어인 일 이십니까?"세자빈이었다.
"빈궁은 어인 일 이시오?""가슴이 답답하여 나왔습니다."두 사람은 함께 걸었다. 모처럼의 동행이었다. 이게 얼마만인가? 시종 신하들을 물리치고 단둘이 걸어보는 것은 혼례 이후 처음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오붓하고 흐뭇해야 할 한밤의 산책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저하, 새집을 지어주는 것이 오히려 두렵습니다.""너무 심려하지 마시오. 고국에 돌아갈 날이 있을 것입니다.""저들이 저하를 돌려보내려면 왜 새 집을 지었겠습니까?""나도 그렇게 생각하오만 희망을 잃지 맙시다.""저 달을 쳐다보면 원손 생각에 가슴이 미어집니다."세자빈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지금 몇 개월째이지요?""이제 갓 돌이 지났습니다. 14개월째입니다.""많이 자랐겠구려."소현세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9년 만에 낳은 맏아들을 만나볼 수 없는 애비, 원손을 볼 수 없는 세자. 무기력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보고 싶습니다."세자빈의 옷고름이 젖었다.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원손,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눈물을 거두시구려.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좋은 소식이라니요?"촉촉이 젖어있던 세자빈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원손이 살아있답니다.""우리 석철이가요?"세자빈은 귀를 의심했다.
"살아서 환궁했답니다.""그게 정말입니까?"믿어지지 않았다. 원손이 살아 있다니 꿈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