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대. 두령 유탁이 사자후를 토해내던 자리
이정근
"두령님도 오르지 않고 비워두는 그 자리에 오르실 장군님은 언제 오십니까?"
벙거지를 쓴 사내의 얼굴에 아침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등주에서 배를 타고 갱갱이에 내리면 빨리 오실 수 있지만 장군께서는 요동을 지나 압록강을 건넌다는 소식이다."
"와! 와! 와!"
그들이 기다리는 장군이 대동강을 건너고 금강을 건너기라도 한 듯이 환호했다.
"깽깽이라는 말은 들어봤는데 갱갱이가 어디냐?"
패랭이를 삐딱하게 쓴 사내가 이지험의 옆구리를 찔렀다.
"넌 어디서 왔길래 갱갱이도 모르냐?"
"한양에서."
시골뜨기와는 상대적 우위에 있다는 눈빛이다.
"여기 사람들은 강경을 갱갱이라 부르거든..."
"강경이 어딘데?"
"이 맹추 같은 친구같으니라구, 강경도 모르냐? 한강 삼개포구, 대동강 남포, 예성강 벽란도, 영산강 영산포와 함께 조선 5대 포구 말이야."
패랭이를 쓴 사내가 배시시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두령이 강경사람이냐?"
"아냐, 임천 사람인데 여기 현감하고도 막역한 사이지..."
"현감하고?"
패랭이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니까 현감이 보낸 초관(哨官)이 우리 산채에 들어와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한양 소식을 그 때 그 때 받아보는 거지..."
"저기 군복을 입은 저 친구들은 그럼 무어냐?"
철릭에 털벙거지를 쓴 사내들을 가리켰다.
"저 친구들은 여기 봉수대 군졸들인데 칼을 차고 있는 저 녀석이 오장(伍長)이고 나머지 넷은 봉졸이야."
"저 놈들이 우리 편이라면 공주 월화산에서 보내오는 한양 소식과 은진 황화산에서 보내오는 남도의 소식을 따먹을 수 있겠네?"
"그야 말하면 마포바지에 비(屁) 빠지기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근데 난 산채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이라 일영오배의 참뜻을 모르거든."
"넌 그럼 뜻도 모르고 다섯 번이나 절했냐?"
패랭이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절을 하지 않느냐? 이 때 하는 절이 일배(一拜). 먼저 가신 조상에게는 이배(二拜). 절집과 문묘에서는 삼배(三拜). 임금한테는 사배다. 국궁사배(鞠躬四拜)라는 말도 못 들어 봤냐? 하지만 우리는 태양을 향하여 다섯 번 절한다. 임금보다 태양을 섬긴다는 뜻이다. 우리는 불씨(佛氏)도 중니(仲尼)도 전하도 믿지 않는다. 오로지 믿는 것은 태양밖에 없다.""이야, 너 참, 유식하다. 그럼 운종가 종을 매달아 놓은 누각을 뭐라 하는 줄 아느냐?"패랭이를 쓴 사내가 화제를 돌렸다. 한양 문제라면 자신이 우위에 설 자신이 있다는 표정이다.
"거야 보신각이라 하지. 인의예지신에서 신(信) 말이다. 일찍이 삼봉이 한양을 설계할 때 동쪽에 흥인문, 서쪽에 돈의문, 남쪽에 숭례문, 북쪽에 숙청문을 두고 중앙에 신의를 중요시한다는 뜻에서 종각을 세우고 보신각이라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