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문 소장이 소장은 “고인돌의 자연 환경을 훼손시키는 개발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육상
이 소장의 설명에 습관처럼 머리는 끄덕였지만, 무게 200톤 정도로 추정된다는 거대한 '핑매바위' 앞에 서보니 어떻게 만들었을까 의문이 생겼다. 주변 채석장에서 돌을 떼어낸 흔적을 분명히 목격했음에도 산 속 곳곳에 자리한 수많은 고인돌들을 사람의 힘으로 세웠다는 게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세계유산에 지정된 화순의 고인돌은 596개에 이른다. 이 고인돌들이 가치를 지니게 된 데에는 이 소장의 역할이 큰 몫을 했다. 이 소장은 1995년 능주목(지금의 화순군 능주면, 도곡면, 도암면, 이양면, 청풍면, 춘양면, 한천면을 포함하는 지역) 조사 때 처음으로 화순의 고인돌을 정리해 뒤늦게나마 고창, 강화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유산목록에 올렸다.
"화순 고인돌의 특징은 수천 년간 계곡 사이사이에 묻혀 있다가 최근에야 모습을 드러냈기에 환경보존이 매우 잘 되어 있고 거대한 덮개돌과 채석장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고인돌의 가치는 외국인들에게 '환상과 신비의 자연'을 꾸밈없이 전해줄 때 빛을 발합니다."12개 면과 1개 읍 그리고 인구 7만5천 여명으로 구성된 조그만 화순군의 입장에서 볼 때 고인돌은 관광자원으로서 분명히 가치가 있다. 또한 화순의 고인돌들은 괴바위, 마당바위, 관청바위, 달바위, 감태바위 등 여러 이야기들을 지니고 있어 호기심을 잔뜩 자극했다. 관광명소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4시간여 동안 이어진 만남에서 이 소장은 끊임없이 "자연보존의 파수꾼인 고인돌의 원형 보존"을 강조했다. 이 소장은 "고인돌 이야기들을 적극 홍보하고 활용하는 선에서 머물러야 한다"며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고인돌의 자연환경을 훼손시키는 등의 개발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화순의 고인돌을 만나러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또한 고인돌공원 주변에는 변변한 휴식 장소도 없었다. 그러나 고인돌을 쉽게 만나도록 길을 넓히고 건물을 짓는 것은 사람을 위하는 일일지는 모르지만 자연과 공존하는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고인돌과의 만남은 천명 같은 것으로 여생을 고인돌과 함께 할 것"이라는 이 소장의 다짐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1월 9일 전북 고창, 고인돌의 군무에 취하다1월 9일 아침식사를 푸짐하게 때운 뒤 11시 15분 광주터미널에서 전북 고창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1시간여를 달리니 산으로 둘러싸인 고창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창터미널에서 택시로 5분 여 떨어진 고인돌박물관에 도착하자, 취재를 약속했던 신동천 문화관광해설사가 반갑게 맞아줬다.
박물관은 잘 단장돼 있었다. 풍부한 사진들과 각종 영상 자료들을 비롯해 정성껏 복원한 여러 재료들은 청동기시대 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도왔다. 추운 날씨임에도 가족과 연인, 단체 관람객들이 눈에 띄었다. 죽은 자가 남겨 놓은 유산이 수천 년을 거슬러 산 자의 눈과 귀 그리고 머리를 일깨우는 역사가 되는 놀라운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