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박능후 경기대 교수(전 양극화민생대책위원)가 제프리 삭스가 지은 <빈곤의 종말>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권우성
1980년대 초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던 제프리 삭스 교수는 어느 세미나에 참석했다. 누군가의 질문을 받고 그는 당당하게 1920년대를 휩쓴 초인플레이션을 현대적 분석 이론으로 설명했다. 아주 당당하게 확신에 찬 모습으로.
그럴 만했다. 1954년생인 제프리 삭스는 미국 하버드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했고, 29살에 하버드 대학 최연소 정교수가 됐으니까. 한마디로, 제프리 삭스는 잘나고 똑똑한 인물. 그가 세미나에서 설명을 마칠 즈음 누군가 그에게 외쳤다.
"당신이 그렇게 똑똑하면 라파스(볼리비아 수도)로 와서 직접 우리를 도와주지 그래요!"농담으로 들렸던 것일까? 하버드의 수재 제프리 삭스 교수는 웃었다. 그러자 그는 다시 크게 외쳤다.
"정말로요!"알고 봤더니 그는 볼리비아 외무 장관과 주미대사를 지낸, 볼리비아의 핵심 정치인이었다. 제프리 삭스 교수는 "내가 다른 나라를 돕는 일은 한 적은 없지만, 당신들이 정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뛰어들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때로 우연적 사건이 한 인물의 인생행로를 결정하기도 하는 법. 이날의 갑작스런 만남으로 제프리 삭스 교수의 삶과 학문은 많은 면에서 변화를 겪는다. 실제 제프리 삭스 교수는 1985년 7월 9일 라파스로 향한다. 그리고 2만 4000퍼센트나 되는 볼리비아 초인플레이션 해결에 많은 기여를 한다.
결국 볼리비아 국민들은 극단적 빈곤 상태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1989년 초, 제프리 삭스 교수는 워싱턴 주재 폴란드 대사관 직원 크쥐시토프 크로바츠키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는 며칠 뒤 제프리 삭스 교수를 찾아 용건을 말한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해 오던 자문이 폴란드에도 쓸모가 있겠습니까?"
제프리 삭스는 폴란드로 떠난다. 결국 한 세미나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은 그에게 책상에만 앉아 책만 파는 교수가 아닌, 전 세계 빈곤 국가를 누비며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 제프리 삭스 교수는 아프리카 말라위, 방글라데시, 인도, 중국 등 전세계 빈곤 현장을 찾았고, 그는 어쩌면 지금 이 시간에도 하버드 강단이 아닌 아프리카 기근 현장에 있는지도 모른다.
15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의 여섯 번째 텍스트는 제프리 삭스 교수가 쓴 <빈곤의 종말>이었다. 위의 이야기 역시 <빈곤의 종말>에 상세히 나와 있는 것이다. 이날 강사로는 전 양극화민생대책위원회 위원인 박능후 경기대 교수가 나섰다. 수강생은 대학생, 교사, 의사 등 다양한 직종에 근무하는 시민 약 100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