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정태춘씨가 지난 5월 26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헌화 후 술잔을 올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49재 겸 안장식이 있었던 지난 7월 10일 봉하마을. 며칠째 퍼붓던 장마비가 거짓말처럼 그치고 한여름 햇볕이 쨍쨍했다. 하얀 종이모자에 노란 플라스틱부채를 든 사람들이 마을을 그득하게 메우던 그 날, 주차장에 임시로 설치한 가설무대에서는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연출을 맡은 정태춘씨는 출연진의 한 사람으로 무대에 서기도 했는데 그날 그가 부른 노래는 <떠나가는 배>였다.
가사를 다 욀 정도로 귀에 익숙한 노래였지만, 이 날 이 곳에서 이 노래를 들을 때는 가사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한 것이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정태춘씨가 노무현 추모곡으로 이번에 새로 만들었나 싶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곳이 어드메뇨 강남길로 해남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물결 너머로 어둠 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 너를 두고 간다는 아픈 다짐도 없이 남기고 가져갈 것 없는 저 무욕의 땅을 찾아가는 배여 가는 배여 언제 우리 다시 만날까 꾸밈 없이 꾸밈 없이 홀로 떠나가는 배 바람소리 파도소리 어둠에 젖어서 밀려올 뿐"그늘 한 점 없는 땡볕 아래 서서 노래를 듣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노래가 돌아가신 이에 대한 추억을 건든 것인데, 단순히 노래가사만이 아닌, 무대에 서 있는 저 가수의 뭔가가, 사람의 마음을 깊이 흔들어놓고 있었다. 약간의 떨림이 있는 남저음의 음색부터 표정까지 총체적인 뭔가가! 50대 중반에, 저 연배에, 무대에서 저렇게 분위기 있는, 저렇게 폼 나는 가수가 또 누가 있나. 그 아우라는 대중적인 인기나 음반판매량, 또는 불철주야 연습과 오랜 작품활동, 또는 특별한 무대매너 같은 것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가 작곡을 접은 지 몇 년이든, 그가 요새 기타 대신 주로 카메라를 들고 다니건 말건, 또는 음악스튜디오보다 가죽공방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건 말건, 그는 여전히 우리 대중음악에서 다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하고도 독보적인 어떤 자리를 갖고 있는 자작곡가수인 것이다.
지난해 연말에 신사동 한 지하 카페의 정태춘 데뷔 30주년 파티(정태춘씨 몰래 부인 박은옥씨와 왕년의 공연팀이 준비한 깜짝파티 겸 콘서트였는데)에서 "정태춘은 OO다"의 빈칸을 채워보라는 사회자의 주문에 가수 김씨는 "정태춘은 희망이다"라는 다소 뻔한 대답을 내놓아 좌중을 실망시켰는데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여서 사태를 역전시켰다.
"한국에서 남자가수가 외모와 상관없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희망이죠." 실제로 사춘기 시절의 정태춘씨는 가수 할 외모가 아니라는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하고 20-30대 시절의 사진을 지금 보면 콤플렉스도 무리는 아니다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한 지금의 그는, 봉하마을 무대 위에서 그는, 분위기 있는, 묵직한 중년의 매력을 풍기는, 심지어 잘 생겼다는 느낌마저 들게 하는 그런 캐릭터다. 그러니까 그는 멋있게, 잘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에게 왜 <떠나가는 배>를 골랐느냐고 물어보았다. <떠나가는 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즐겨 부르던 노래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야인으로 지내던 시절이었는데, 정태춘 박은옥씨가 부산지역에서 행사를 마치고 그와 함께 노래방에 가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여하튼 봉하마을 가설무대의 강렬한 감흥은 쉬이 버려지지 않아 서울로 돌아온 나는 <떠나가는 배>를 아코디언으로 연주해 정태춘 박은옥 커플의 비공개카페에 올림으로써 작가에 대해 오마주를 바쳤다. 그런데 연주를 위해 <떠나가는 배> 악보를 들여다보면서 새삼 내가 놀란 것은, 정태춘씨가 고작 서른 나이에 이 노래를 작곡했다는 사실이었다. 서른이 걸작을 쓰기에 이른 나이였다는 얘기가 아니라, A마이너-가단조의 처량한 곡조와 어딘가 노년에 어울리는 비감한 가사의 이 노래를 만들어서 부른 이가 이제 군대 제대하고 갓 데뷔한 파릇파릇한 젊은이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