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선 할아버지가 묵은 사진을 꺼내 놓고 지나온 세월을 더듬고 있다.
하병주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만남은커녕 소식조차 듣지 못했으니, 가족과 고향에 관한 할아버지의 기억도 거기까지인 셈이다.
남쪽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었던 김 할아버지는 서울에 한 달을 머문 뒤 부산으로 내려가 1년을 지냈다. 그러던 중 '고향사람이 살고 있다'는 소식에 무작정 삼천포로 향했고, 그렇게 고향사람을 만나 의지하면서 정착하고 산 것이 58년째다.
그 사이 지금의 부인을 만나 결혼도 했고, 슬하에 딸 셋, 아들 하나까지 뒀다. 집을 마련하고, 자식들을 키우고 교육시켜 사회에 내보내고… 그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행복을 키워나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북에 둔 가족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 애틋함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흘린 눈물이 얼마인지 모른단다. 술로 달랜 시간이 얼마인지 모른단다.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혈혈단신이었겠다. 거친 세상에서 홀로 부대껴야 할 고통도 적지 않았겠고, 가족을 두고 홀로 떠나왔다는 자책감도 컸을 것이다. '어찌 눈물의 나날이 아니었으랴!'
할아버지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던 부인이 불쑥 거든다. "젊어서는 올매나 울고 또 술 마시고 했는지 몰라. 아이들만 아니었으면 콱 도망가삤을 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