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회 발자취를 적어 놓은 병풍입니다.
최종규
인터넷포털 네이버를 열어 보면, "한글학회 설립연도 1908년"으로 밝혀 놓지만, 정작 "본문 내용"에서는 1921년 12월 3일에 문을 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스스로 잘못된 정보를 엉뚱하게 엇갈린 채 놓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인터넷포털 다음을 열어 보면, "1908년 8월 31일 '국어연구학회'라는 명칭으로 창립되었고, 이때 회장은 김정진, 주시경은 강습소의 강사로 활동했다. 학회 이름을 1911년 9월 3일 '배달말글 몰음'으로, 1913년 3월 주시경이 회장에 오르면서 '한글모'로 바꾸었고, 강습소도 1911년 '조선어강습원'으로, 1914년 '한글 배곧'으로 바꾸었다. 그러다가 1917년부터 활동이 침체되자 1921년 12월 3일 임경재·장지영·이규방·신명균 등이 '조선어연구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기존에는 조선어연구학회를 한글학회의 기원으로 보았으나 그 이전의 국어연구학회에 대한 자료가 수집됨에 따라 정정되었다. 학회 이름이 1931년 1월 '조선어학회'로 다시 바뀌었다가 1949년 9월 지금의 명칭인 '한글학회'로 정착했다"고 꼼꼼하게 밝혀 놓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어느 모임과 도서관과 학교 자료가 그러지 않겠느냐만, 한글학회조차도 꽃등 자료를 알뜰히 건사하지 못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일제강점기에 조선어학회는 모질게 억눌리고 시달렸으며, 숱한 국어학자가 끌려가 고문을 받다가 죽었습니다. 이무렵 수많은 자료를 빼앗겼고, 한국전쟁 때에도 숱한 자료가 불타거나 사라졌습니다. 조선어학회가 펴내려 했던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일본 헌병이 빼앗아 갔다가 해방 뒤 어렵사리 창고에서 찾아내어 1947년에 가까스로 1권과 2권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이가 없어 열 해 동안 뒤엣권을 내지 못한 끝에, 미국 재단한테서 종이와 돈을 얻어 나머지 3∼6권을 1957년에 펴내며 비로소 '우리 말 다루는 큰사전'이 빛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