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안쪽에 들여놓았을 때, 골마루와 책꽂이 모습.
최종규
부산지하철 연산역에서 내려 8번 나들목으로 나온 다음 큰길을 따라 죽 걸어가면 부산 소망교회 건너편 지하에 자리잡고 있는 〈헌책방〉입니다. 지하철역부터 〈헌책방〉까지는 그리 가깝지 않으나 그렇게 멀지도 않습니다. 느긋하게 걸을 만한 거리이고, 사뿐사뿐 거닐어도 좋은 거리입니다. 다만, 연산역에서 내려 두리번두리번 살피니, 동네가 온통 시끌벅적합니다. 술집과 여관 불빛이 번쩍거리고, 이 동네를 오가는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쓰는 데에만 마음을 쏟고 있지 않느냐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스스로 책을 퍽 좋아하지 않는다면, 연산역에서 내려 〈헌책방〉까지 가는 사이에, 밥집이든 술집이든 옷집이든 붙잡히거나 거쳐 가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한편, 동네 안쪽은 고즈넉합니다. 고즈넉한 동네 한켠에는 저잣거리가 제법 길게 펼쳐져 있습니다. 동네 저잣거리이지만, 부산답게(?) 저잣거리에서 회감 파는 집이 퍽 많습니다. 책과 함께 술을 좋아한다면, 먼저 책방에 들러 마음밥을 넉넉히 받아들인 다음, 연산동 저잣거리 회집에 들러 막회 한 접시와 맑은 술 한 병으로 몸밥을 채워도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여기서 몇 해 지낸 적이 있는데, 연산동이 꽤 괜찮은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책방이 하나도 없는기라. 그래서 여기에 책방 하나 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연산동에 헌책방을 연 〈헌책방〉 일꾼 정영곤 님은 공무원 일을 그만두고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열아홉 해째 일하던 어느 날, 당신 스스로 이렇게만 일해서는 안 되겠다고 느꼈고, 당신한테 남은 삶을 보람있고 뜻있게 보내려면 다른 새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으며, 곰곰이 헤아리고 살핀 끝에 '헌책방 문화사업'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일하는 가운데 알맞춤한 자리를 찾아보러 다니고, 책을 사러 다니며, 다른 헌책방 일꾼을 찾아다니며 도움말과 길잡이말을 들으며 배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꼭 스무 해를 채운 다음 스스로 명예퇴직을 합니다. 그때가 2008년 4월입니다.
"내가 (국민건강보험공단) 그만둔다니까 상사가 불러서 그럽니다. '그래, 그만두고 뭐할긴데?' '헌책방 할깁니다.' '너 미쳤나. 연봉 잘 주고 정년을 보장해 주는데 왜 그만두나.' 헌책방이든 뭐든 할라면 연봉 다 받고 정년하고 난 다음에 해도 되지 않냐고 그럽니다. 그래서, 할라면 지금 해야지 나중에 할라고 하면 그때에는 힘도 없고 제대로 못합니다, 그랬지. 그러고 나서 그만두고 개업할 때 (상사가) 와 보더니, 어 잘 꾸몄네 좋네 잘해 봐라, 그럽디다." 〈헌책방〉 아저씨가 공무원 자리를 그만두고 나올 때에, 다른 누구보다 집에서 힘들어 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공무원 자리는 다달이 일삯이 꼬박꼬박 들어오지만, 새로 열어서 꾸리는 헌책방 일이란 일삯이 얼마나 들어올는지 모를 뿐더러, 자칫 퇴직금을 푼푼이 갉아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헌책방〉 아저씨는 공무원으로 있을 때부터 네 군데 사회단체에 다달이 이만 원씩 하던 뒷배를 끊지 않고, 이제는 다달이 만 원씩 뒷배를 한다고 합니다. 먹고살기에 만만하지 않을 수 있을 뿐더러, 만만하지 않기도 하지만, 당신 스스로 '쇠밥그릇과 같은 자리'를 당차게 떨치고 나온 뜻을 고이 지키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