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놓인 방명록
임지혜
김영갑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좋아하는 사진들은 생생한 보도 사진, 현장 사진들이었다. 그러나 김영갑을 알게된 뒤부터는 풍경 사진이 가져다주는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오로지 사진 찍는 일에만 최선을 다했던 김영갑,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열정을 끝까지 보여줬던 몇 안되는 예술가 중의 한 명이다.
그의 저서 '그 섬에 내가 있었네'는 김영갑을 좋아한다면 꼭 봐야하는 책이자 김영갑을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책이다. 제주도에 내려와 살면서 겪었던 생활상과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된 뒤의 그의 심리 상태와 갤러리 두모악을 만들기까지의 과정들이 책에 실려 있다.
김영갑은 돈이 없어 제주도에서도 집값이 싼 시골 마을로 찾아들었다. 그 작은 마을에서도 셋방을 얻어 살아야했는데, '낯선이방인'인 김영갑은 경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간첩인 것 같다는 마을 주민의 신고로 경찰서에 드나들기도 여러 번이었고, 마을을 떠나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김영갑은 그런 주민들을 미워하기보다는 이해하려 애쓰며, 꿋꿋이 살아나갔다.
그것이 기특해보였는지 이래저래 길을 가다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혼기가 다 찼음에도 혼자 사는 김영갑을 걱정하며 어서 여자를 만나라고 진심 어린 잔소리를 늘어 놓곤 했다.
김영갑은 물로 허기를 채우면서도 필름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고, 오름으로 들판으로 그렇게 헤매고 다녔다. 그렇게 찍은 필름은 제주의 습기 탓에 곰팡이가 피기 일쑤였고, 장마에 카메라를 버리는 등 사진 작업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김영갑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카메라를 장만하고 또 사진을 찍었다.
이런 궁핍한 생활을 해왔던 김영갑이었기에 그가 나중에 회고한 이 말에 나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이젠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다. 필름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형편이 좋아졌다. 그런데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다. 병이 깊어지면서 삼 년 째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다. 끼니 걱정 필름 걱정에 우울해하던 그때를, 지금은 다만 그리워할 뿐이다. 온종일 들녘을 헤매 다니고, 새벽까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던 춥고 배고팠던 그때가 간절히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