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덕수궁 앞에서 아코디언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연주를 하는 시민이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등에 두르고 있다.
권우성
정치인 노무현의 별명은 '바보'다.
"사실은 그 바보라는 말은 참 많이, 수없이 들어왔던 얘기였습니다. 바보같이 왜 그러냐고, 바보같이, 아흐 바보같이."
2007년 9월 청와대 인터뷰에서 별명이야기가 나오자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말했다.
- 누리꾼들이 바보라는 애칭을 붙여주기 전에도 그런 말을 들었다는 거지요? "수없이 들어왔어요, 친구들한테 수없이. 그땐 핀잔으로 들어온 말입니다. 그땐 슬펐어요."
그 슬프던 것이 느낌이 달라지자 이제는 "기분 좋은" 것이 됐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사람들이 붙이는 바보라는 이름이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원칙을 가지고 욕심을 포기한 사람에게 붙여주는 애칭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은 거죠. 나한테는 정말 영광스러운 애칭이죠. 아 그래서 그때부터 기분이 좋은 바보가 됐어요(웃음), 기분 좋은 바보가 됐어." 별명 지은 누리꾼에게 보낸 노무현의 편지 노무현이 바보 별명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2000년 3월 22일 유니텔 플라자에 '바보 노무현'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면서부터다. 그 글은 당시 삼성에 근무하고 있던 유중희씨(현 54세)가 썼다. 2000년 4·13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부산 출마를 선언한 정치인 노무현은 대기업 직원이자 누리꾼이었던 유씨에게 바보처럼 보였다.
"굳이 떨어질 것으로 확실한 부산에서 내리 3번이나 더 떨어지는 초라한 바보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유씨는 A4용지 한 장 분량의 그 글에서 이런 희망을 적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영특한 사람을 국회의원과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너무나 많은 실망을 경험하였다. 그래서 이제는 전 국민이 우직한 바보가 되어 우리 대한민국에서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하며 소신과 지조를 지키고 야합하지 않는 바보 대통령이 탄생되는 그날을 기대해 보고 싶다."유씨는 그 희망을 위해 이렇게 제안했다. 모두 바보가 되자고.
"그러나 이번만은 노무현만이 바보가 아니라 그 지역구의 유권자들도 같이 바보이기를 바라고 싶다. '바보 노무현'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주는 바보 같은 부산시민들! 노무현 바보! 부산시민 바보! 그리고, 나도 그 바보의 대열에 끼이고 싶다."이 바보 희망가가 유니텔에 올랐을 때 조회수는 불과 470회에 지나지 않았다. 그중에서 82명만이 추천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글을 노무현 홈페이지에 올렸고, 이후 폭발적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바보는 정치인 노무현의 별명이 되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부산에서 낙선했다. 부산시민이 그와 함께 바보가 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패배자 노무현은 이때 그의 별명을 만들어준 유씨에게 이메일 편지를 보낸다.
[전문] 노무현이 쓴 이메일 |
안녕하십니까. 노무현입니다. 답신이 늦어 죄송합니다.
제가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한 선거에 패하고 나서 아픔도 있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저를 믿고, 도와주시고,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 참으로 미안하더군요.
이때 선생님의 저에 대한 격려의 글은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홈페이지에 워낙 많은 글이 실려 전부 출력해서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돌려보았습니다.
글쎄, 뭐랄까요. 감동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제가 헛되게 산 게 아니구나, 제 선택은 옳았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는 옛말이 있지요. 우리 국민이 무엇을 원하고 제게 무엇을 바라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란 말이 생각납니다. 제게 보내주신 이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 변치 않으려 합니다.
마음을 글로 전한다는 게 참 어렵네요.
이 소중하고, 귀한 인연. 헛되이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가장 아름다운 인연으로 가꾸고 키워보려고 합니다.
최근 인터넷을 매일 한 시간 이상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공부할 자료들,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많이 도와주십시오.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저와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졌으면 합니다. 성심껏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6월 6일은 정치인 최초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팬클럽이 행사를 해서 대전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덕분으로 '바보 노무현'이 '행복한 노무현'이 될 것 같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0.6.9 노무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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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 인간 노무현이 이 세상에 없는 지금 그 문장이 우리 눈에 박힌다.
이 편지를 낙선자 노무현에게 받았던 유씨는 지금 제주도에 살고 있다. 어제 그와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생전에 한 번도 정치인 노무현을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 없고 "멀리서 좋아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 검찰수사를 받을 때 '얼마나 힘드시냐'고 이메일 편지를 보냈다"면서 "제주도에 마련된 두 군데에서 조문을 했다"고 말했다.
"정치 지도자는 바보가 되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