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잔치부모님 뜻에 따라 경기도 성남에서 혼인잔치를 한 동무녀석은 저가 사는 집이나 우리들이 사는 집이나 다 인천인데 먼 데까지 찾아갑니다. 혼인잔치를 찍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붙어 있는 동안, 저는 멀거니 떨어져서 예식장 풍경을 넓게 담아 봅니다. 가까이에서 얼굴을 크게 담는 사진도 몇 장 찍어야 할 테지만, 예식장 둘레가 어떠했고 누가 왔으며 어떻게 기뻐해 주었는지를 담아내어 건네주어도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식장 사진을 찍을 때 꼭 신랑신부 얼굴만 찍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최종규
고양이집처럼 쓰기도 하는 가방을 버리지 않고 한쪽에 두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안에 넣어 보지만 아직 새끼한테는 너무 큽니다. 작은 바구니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며 무엇으로 보금자리를 삼을까 하다 보니, 자전거 헬멧이 보입니다. 그래, 요놈이 꼭 맞겠구나. 수건으로 바닥을 깔고 새끼 고양이를 넣은 다음 위를 푹 씌웁니다. 그러나 새끼 고양이는 헬멧 품에 안길 때보다 제 무릎 품에 안길 때 한결 새근새근 잠듭니다. 이 녀석도 고운 목숨이니까요. 이 녀석도 몸속에 따순 피가 흐르는 목숨이니까요.
무릎에 올려놓고 한손으로 등판을 어루만지며 책이라도 펼쳐 봅니다. 우리 아기 키울 일로도 생각이 많은데, 새끼 고양이 키우는 일을 새삼 생각해야 한다니 이 무슨 일인고 싶지만, 예수님 말마따나 "뜻대로 하소서"입니다. 사람으로서 고양이 새끼를 살려내는 몫이 나한테 주어지면서, 이렇게 고운 목숨을 살려내는 길에서 나를 살려내는 길 또한 찾으라는 뜻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침 그제 장만하여 읽고 있는 <풍부한 유산>(P.라핀/오영숙 옮김, 성바오로출판사, 1991)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옵니다. 거룩한 사람으로 모시는 '요한 보스코'를 낳아 기른 '말가리다 보스코'라는 어머니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세상이 온통 핏빛 전쟁과 무거운 세금(전쟁할 돈을 모으고 군인을 먹여살리는 데에 들어갈 돈 때문에 무거운 세금)으로 농사꾼들 허리가 끊어지는 때에 농사꾼 딸로 태어나 남편마저 일찍 잃고 홀로 시어머니까지 다섯 식구를 먹여살리던 어머니인 말가리다 보스코라고 합니다. 거룩한 요한 보스코는 세상 어느 곳 어느 때에나 가장 거룩하지만 가장 낮은 이름인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거룩한 사람'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입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내가 거룩한 사람이 된다면 내 어머니 또한 거룩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아니 사람들이 거룩하게 여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꾸로, 내가 못난 사람이 된다면 내 어머니 또한 사람들한테 못난 어머니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어머니로서는 당신 모든 마음과 힘을 쏟아 당신 아이를 훌륭히 키우려고 했을 테지만, 당신 아이 스스로 홀로선 다음부터 얼마나 애쓰느냐에 따라서 어머니 이름자리가 달라집니다(그렇지만, 당신 아이가 못난 사람이 된다 하여도 어머니는 거룩한 분입니다).